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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얘기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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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얘기해 볼까요
  • 홍성녹색당 김은희
  • 승인 2024.02.2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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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까지 전업주부로 살았다. 결혼 전 노량진에서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동네 학원 시간 강사로 일했지만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2010년 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방과 후에 혼자 어딜 가든, 집에 있든 할 수 있다고 했다. 딸아이가 자기 시간을 자기가 운용하면서 나도 내 시간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나는 공부를 했다.

대학교 안 인문학의 인기가 떨어지는 현상과 달리 학교 밖 인문학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 흐름에 맞춰 여러 지역에 인문학 공동체를 표방하는 곳이 생겼고, 동네 인문학 공부 모임에 찾아갔다. 책을 잘 읽고 짧게라도 글을 쓰고, 세미나를 하는 과정을 5년 정도 계속했다. 논어를 읽고, 니체 강의를 듣고, 푸코를 읽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과 서로 ‘너는 왜 여기 와서 공부하게 되었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되는 거 아니냐’ 등의 농담 반 진담 반의 수다를 할 때였다. 집에 돈을 벌어서 가져오는 사람(남편)이 있으면 철학을 가져오는 사람(나)도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결혼 이후 남편과 이런 비슷한 문제로 여러 번 다퉜다. 돈 벌어오는 일만 노동이고 돈 못 버는 집안일은 노동 취급하지 않는 태도가 원인이 되었다.

남편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착각을 했지만 돈을, 말 그대로 만원 짜리 지폐를 그대로 먹거나 입을 수는 없다. 만원 권 몇 장을 가지고 가게로 가서 생선 한 마리, 시금치 한 단, 두부 한 모를 사와야 된장국과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을 수 있다. 하루만 입어도 목 뒤가 까매진 셔츠를 칼라 부분은 먼저 세재로 문지른 후에 세탁을 하고 잘 털어 말려서 다림질까지 해둬야 남편이 입고 출근할 수 있다. 돈은 먹고 입고 살 수 있게 우리의 삶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화폐에 관한 너무 낡은, 원시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돈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돈만으로 살 수는 없다.

13년간 진행 중인 후쿠시마 핵발전소 관련 다양한 문제도 결국은 철학 없이, 돈만 중요하다고 여기는 지점에서 생겨난 것 같다. 깊고 세세한 공부는 잠깐 미루어두고 내가 아는 한에서 간단하게 정리하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14m 이상의 쓰나미가 몰려와서 핵발전소를 덮쳤고, 전력이 끊긴 상태에서 연료봉을 식힐 수가 없었고, 후쿠시마 발전소 1, 2, 3호기는 핵 연료봉이 녹아내렸다.

사고가 난 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원자로 안에는 꺼지지 않는 불덩어리인 핵연료가 여전히 인간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의 방사능 물질과 열을 뿜어내면서 지하로 녹아 들어가고 있고, 여전히 매일 100톤의 물을 부으면서 식히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사고 지역 원전 폐로 시점을 2051년까지라고 잡고 30년 동안 오염수를 정화, 희석해서 바다로 쏟아 붓겠다고 계획한다. 현재는 녹아내리는 핵연료를 거두어 담을 기술이 없으니 기술 개발하고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오염수를 30년이 아니라 40년, 50년 바다로 보내야 할까.

여기쯤에서 왜 바다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2023년 2월 6일자 국민일보를 보면 비용문제, 즉 일본이 돈을 아끼려고 해양방류를 결정했다는 의심이 든다. 2020년 작성된 다핵종제거설비(ALPS) 소위원회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일본 내 처리 방식인 ‘오염수 지하 매립’에는 2431억엔이 필요하고, ‘수소 배출’에는 1000억엔, ‘수증기 배출’에는 349억엔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해양 방류’에는 증기 배출의 10분의 1 수준인 34억엔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2431억엔으로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오염수 지하 매립’은 일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인 것처럼 보이고, 가장 저렴한 34억이 드는 ‘해양방류’의 경우는 내집 쓰레기를 옆집, 앞집, 뒷집에 나눠놓는 ‘방치’인 것처럼 보인다. 2431-34=2397 단순계산으로 아낀 2397억엔으로 일본정부는 무엇을 할까? 2397억엔은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일본 사람도 엔화 지폐를 먹고 살 수는 없다. 핵오염수가 흘러간 바다에서 잡은 삼치와 연어를 먹고, 그 바닷물로 만드는 소금이 필요하다.

사고처리 비용으로 얼마나 큰돈이 드는 가 계산하기 전에 사고처리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거듭 질문하고, 각기 다른 이익을 대표하는 집단들이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참여했어야 한다. 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정하기 위한 여러 연구 중에서 비용만 고려 대상인가, 핵발전소 사고 처리도 가성비를 따질 일인가. 이미 쏟아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 없다고 자포자기 상태로 살 것인가.

소금을 사서 쟁여놓고, 김, 미역도 사놓고, 앞으로 생선은 안 먹고, 소, 돼지, 닭고기를 먹으면서 살 것인가.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했다고 30년 넘게 계속 방류하도록 둘 것인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처음에 잘못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생각하고 반성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철학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1차 해양 방류는 2023년 8월 24일 시작되었고, 2023년 11월 20일 3차 방류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2024년 2월 하순 4차 방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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