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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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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 장길섭 농민·홍성녹색당
  • 승인 2023.12.2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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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이 아니다.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다. 불완전한 인간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 인간이 저지른 일 중에 해서는 안 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원자를 쪼개서 에너지를 얻은 일이다. 이른바 ‘원자력 발전’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은 원자를 쪼개서 에너지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처리할 능력이 없다. 핵쓰레기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핵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수천 수만 년 동안 관리해야 한다.(지구상에 수만 년 지속된 국가가 있는가?) 핵폐기물은 우라늄을 태운 재인데 이것은 꺼지지 않는 불이다. 인간이 끌 수 없는 불이다. 냉각수로 계속 식혀야 하는 불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고준위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능력을 갖춘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의 핵쓰레기는 핵발전소 부지에 임시 저장하고 있을 뿐이다.

지구상에는 수백 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수많은 핵사고가 일어났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 다만 너무나 큰 사고라 도저히 숨길 수 없었던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사고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 사고만이 보통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대형 핵사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1986년에 일어난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와 2011년에 일어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사고가 일어난 경위는 달랐지만 사고의 처리 과정과 결과는 동일하다. 대략 정리해보면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두 사고 모두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고 처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고 아마도 미봉책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지금도 방사능이 나오고 있고 막대한 돈을 들인 콘트리트 돔으로 핵발전소를 덮어 씌워 놓았을 뿐이다. 체르노빌 주변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다. 후쿠시마는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불을 끄지 못하고 원자로에 물을 퍼붓고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 때문에 막대한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두 사건 모두 전력회사, 핵전문가, 국가의 책임자들이 처벌받지 않았다. 발전소 주변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태계가 돌이킬 수없이 파괴되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셋째, 핵사고의 희생자는 언제나 노동자, 농민, 어민 등 가난한 민초들이다.

넷째, 미증유의 돌이킬 수 없는 핵사고를 두 번이나 겪고 나서도 정치인들과 소위 핵전문가들은 핵발전은 값싸고 안전하다는 거짓말을 여전히 변함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값싸고, 탄소 배출이 없는 핵발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핵전문가들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우선 핵발전이 값싸다는 것은 핵쓰레기 처리 비용이 천문학적임에도 의도적으로 계산에서 누락시켰기 때문이고, 탄소 배출이 없다는 것도 우라늄의 채굴, 정련 과정과 핵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다섯째, 구소련이나 일본이라는 국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였다면 두 번의 핵사고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핵발전소가 애초에 건설되지도 않았을 것이다.(핵발전소 건설 문제를 두고 덴마크에서는 시민합의회의라는 회의체를 만들어 일반 시민들을 추첨으로 뽑아 핵발전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토대로 장기간 숙의를 하게 하였다. 시민들은 덴마크에 핵발전소를 건설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고 덴마크 정부는 시민들의 결정을 그대로 따랐다)

우리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어떤 신발을 구매하여 신을 것인가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신발에는 구두, 운동화, 고무신 등이 있다. 그런데 구두 제조업자가 구두가 가장 값싸고 좋으니 국민들이 모두 구두를 신어야 한다고 강요한다고 생각 해보자. 우리가 어떤 신발을 신을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소위 구두 만드는 ‘전문가’가 우리 시민들이 어떤 신발을 신을지 결정해야 하는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도 전문가가 아닌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고 이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어떤 전기를 쓸 것인가는 정치의 문제고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이것은 전문가들이 결정해줄 문제가 아니고 전기를 사용하는 시민인 우리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마치 모든 일의 전문가인 양 행세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우리시민들은 지금까지 정치인들과 소위 ‘핵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국가와 자본의 노예 노릇을 하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온 것을 잘 모르고 있다. 우리는 전문가에게 속지 말아야 하고 우리의 민주적 권리를 전문가에게 양도해서도 안 된다.

다시 되풀이 말하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했다면 후쿠시마 핵사고도, 핵오염수 문제도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핵발전 문제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민주주의의 쇠퇴와 관련이 있다. 민주주의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면 걷잡을 수 없이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회생시킬 수 있을까? 나는 그 첫걸음이 자본과 국가에 예속되지 않고 진실을 전달하는 독립언론 매체를 가려내어 읽고 그 매체가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알아야 해법도 제대로 나올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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