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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에서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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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에서의 식사
  • 조종수 수필가
  • 승인 2024.01.09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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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를 먹으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밀을 빻아 가루를 내어 반죽하고 거기에서 가느다란 면발을 뽑아 먹을 생각을 해냈는지 최초의 그 누군가가 궁금해졌다.

밀가루 반죽을 도마와 같은 바닥에 내리치고 늘이고 겹치기를 반복하며 일정하고 가느다랗게 가락을 내는 수타면 만드는 법을 알아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반죽을 국수틀의 구멍에 넣고 공이로 눌러 반죽이 물뿌리개 같은 작은 구멍으로 삐져나오게 하는 압면 만드는 법을 알아냈을 것이다. 또한 반죽을 밀대로 얇고 평평하게 펴서 몇 번 접은 후 칼로 얇게 썰어 만드는 칼국수 만드는 법을 알아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기원전 6000년경부터 국수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선사시대에 원시인들이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앞다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어떻게 요리해야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연구했다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그 당시에도 단순히 먹는 것보다는 맛있게 먹는 것이 더 중요했으리라.

국수는 면발을 삶아 고추장, 춘장, 토마토 소스 등을 넣어 비벼 먹기도 하고 해물, 채소, 고기 등으로 만든 육수에 면발을 넣고 끓여 뜨거운 것을 후후 불며 먹기도 하는데 재료 구하기도 쉽고 맛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대부분 비슷하게 국수 요리를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리법이 비교적 간단한 국수 요리도 숨은 비법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을 한다. 국수는 식당 메뉴 중 저렴한 가격에 속하지만, 육수 만드는 재료와 양념 배합 비율의 차이 등으로 맛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시사철 유난히 손님으로 북적이는 집들이 있다. 이런 집에서 국수 한 그릇 먹으려면 긴 줄을 서는 수고를 해야 한다.

언젠가 당진에 볼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점심 식사를 위해 면천 소재지에 잠깐 들렀던 일이 있다. 한 끼를 먹더라도 그 지역의 유명한 맛집에서 먹고 싶은 마음에 소재지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누구한테 물어본 것도 아니고 그냥 손님이 많은 식당이 맛집이겠거니 하고 무작정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나 면 소재지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식당도 많지 않았고, 있어도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마땅히 들어갈 만한 식당이 보이지 않아 어찌어찌 가다 보니 면천읍성 안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비록 시골의 작은 면 소재지였지만 읍성 안에는 옛 거리와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보존되어 있었다.

거리를 따라 기와를 올린 벽돌집과 목조 건물은 각각 책방과 미용실, 찻집, 공예품 가게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 마치 60년이나 70년대의 거리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콩국수 식당 밖에 수많은 손님이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광경이었다.

맛집을 찾아 헤매다 우연찮게 발견한 것이다. 줄이 더 길어질까봐 재빨리 주차하고 줄을 섰는데 앞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손에 번호표를 들고 있다. 그래서 급히 식당 문을 열었다. 오래된 구식 건물 안에 콩국수를 먹거나 기다리는 손님으로 꽉 차 있다. 서둘러 주인을 불러 4명이라고 하니 칠판에 ‘26-4’라고 적고 26이라고 적힌 대기표를 주었다.

26이라는 숫자는 26명이 아니고 26번째로 우리 4명이 입장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안에 있는 손님이 다 나가도 곧바로 차례가 오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라 도저히 줄을 서서 기다릴 수 없어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 시간가량 지났을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늘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불평을 쏟아 냈다. 콩국수를 먹고 맛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일행들에게 “아니, 이런 걸 한 시간 넘게 줄을 서고 먹었다니!” “이것은 콩국수도 아니다” “왜 이런 곳에 오자고 했냐” 등등 불만을 쏟아냈다.

그의 이런 행동으로 나에게 약간의 갈등이 생겼다. 그것은 계속 대기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식당에 가서 먹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는데 지금 자리를 옮긴다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콩국수 맛이 다 비슷하지 얼마나 더 맛있는 걸 기대했길래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그냥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순번 앞에 있었던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걸 감지했다. 순간 본능적으로 식당 문 앞으로 가니 종업원이 문을 열고 내 번호를 외친다. 차례가 된 것이다.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놓는데 수저가 없다. 그 대신 ‘수저가 필요할 경우 주문할 때 요청하라’는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콩국수를 젓가락으로 후루룩 먹고 콩물은 대접째 얼른 마시고 나가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콩국수와 열무김치를 놓고 갔다. 색깔이 푸르스름한 것이 쑥을 첨가한 콩국수다.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은은한 쑥 향이 입안에 퍼져갔다.

내 혀가 미세한 맛까지는 감지해내지 못하는 관계로 쫄깃한 면발과 일반적인 콩물의 맛, 그리고 쑥 맛을 감지해냈을 뿐이다. 거기에 더해 뙤약볕에서의 오랜 기다림 끝에 간신히 차례가 되어 느낀 ‘다행’이라는 기분이 더해져 미각을 한껏 더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보람 있는 한 끼의 식사였다.

‘후르륵, 후르륵’ 폭풍 흡입으로 면발이 없어지자 콩물을 대접째 들고 들이켰다. 식탁 위에는 누구의 것이 먼저냐의 순서만 있을 뿐 덩그러니 네 개의 빈 그릇이 놓였다. 그러면 되었다. 모두가 잘 먹은 것이다. 네 명이 각자의 그릇에 담긴 콩국수를 먹었지만 똑같은 맛을 느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식탁 가장자리에 놓인 소금으로 주방장의 맛을 변경시키지 않았고, 자기가 느낀 맛에 대한 품평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한 끼 색다른 배부름에 만족하며 뙤약볕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서둘러 식당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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