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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과 고목, 푸줏간과 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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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과 고목, 푸줏간과 서당
  • 청운대 김미경 교수
  • 승인 2023.11.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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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는 아니겠지만 흥망성쇠 사이클에서 보통사람들은 세상의 박자에 맞추어 살아간다.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얼굴을 내밀고 서해대교 풍향계는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통사람들도 권력의 풍향계에 그 태도를 맞춘다. 어떤 사람은 바람이 불면 풀잎처럼 눕고 어떤 사람은 바람이 불면 마주하며 앉는다. 풀잎처럼 눕는 사람은 일단의 바람을 피하고 소생하기를 바랄 것이다. 바람을 마주하는 사람은 불어오는 바람에 등을 돌려 앉으면 어딘가가 바람에 꺾여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바람을 감당하는 것이다.

무엇이 더 지혜로운지 알 수 없다. 삶을 살아오면서 체득한 해법대로 선택할 것이다.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풀잎처럼 눕는다. 각자의 독특한 자세로 구부리거나 눕거나 낮춘다. 머리를 쳐들지 않는다. 온순하고 순응적인 풀잎처럼 때론 비겁하게 때론 약삭빠르게 눕는다. 그러나 바람에 저항하는 사람도 있다. 온몸 구석구석 풍파를 맞다가 피할 수 없는 바람결에 맞추어 춤추듯이 고난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수모와 모욕을 견디며 유선형의 내공을 쌓는다고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도 눕지 못하는 그 성정을 탓하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는 조직에서 풀잎 같은 사람들을 우대한다면 풍파를 막을 수 있을까? 고목같이 뻣뻣한 사람들의 바람막이가 없다면 풍파를 막을 수 있을까? 성장하는 조직은 고목과 풀잎이 어우러져야 한다. 풀잎이 고목인체 하는 것도 옳지 않고 풀잎의 알랑거리는 즐거움에 헛갈려서도 안 될 것이다.

선생 앞에서는 글공부에 대해 말하고 백정 앞에서는 돼지 얘기를 한다(對着先生就講書, 對着屠夫就講猪)는 옛 격언처럼 각자의 정체성에 맞는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간의 정체성일 수도 있고 사람의 정체성일 수도 있지만 고등교육기관에서 고등교육을 하고 시장에서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고등교육을 위해 돼지를 글공부처럼 얘기하면 선생과 백정과 글공부와 돼지는 그냥 한 가지다.

어떤 조직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선명한 정체성을 갖춘 우수한 인적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우수한 인적자원은 동창과 친구가 아니다. 훌륭한 자원은 글공부와 돼지의 차이를 분명히 아는 전문가들이다. 그런데 선생인지 백정인지도 헤깔리는 사람들이 글인지 돼지인지도 모르는 말을 한다면 그곳은 푸줏간일까? 아니면 서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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