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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오염수를 넘어 탈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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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오염수를 넘어 탈핵으로
  • 홍성녹색당 신은미
  • 승인 2023.10.0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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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우울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한 달을 보냈다. ‘엎질러진 물’(방사성 오염수)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 우리 정부의 무책임함과 정치의 부재로 인한 분노, 바다생태계와 미래세대에 끼칠 영향을 생각했을 때의 부끄러움, 미안함 등이 뒤섞여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곱씹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방사성 오염수(이하 오염수) 투기 반대에 200만 명의 시민이 서명하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오염수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지 않으면 오염수 문제가 단지 건강의 문제로, 어민이나 수산물의 문제로, 일본의 문제로 좁혀지거나 희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지난 8월 24일부터 9월 11일까지 7800톤의 방사성 오염수 1차 방류를 완료했다.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탄소-14, 세슘-137 등 방사성 핵종이 검출됐지만, 도쿄전력은 검출 한계값 미만이라며 9월 말 2차 방류를 예고했다. 인류 역사상 없던 일, 예측이 불가능한 일이 강행되고 있다. 앞으로 30년 간 하루 최대 500톤의 방사성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간다. 전체 134만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보관 중인 오염수 외에 매일 100톤의 오염수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어 실제로는 4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원자로 내부로 녹아내린 방사성 물질 덩어리인 ‘데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오염수는 계속 발생될 수밖에 없다. 도쿄전력도 현재로서는 ‘데브리’를 제거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방법과 계획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오염수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 오염수만 눈앞에서 없애겠다는 근시안적인 발상이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염수 문제는 핵발전을 멈추겠다는 결단 없이는 풀 수 없다. 미국 스리마일(1979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1986년), 일본 후쿠시마(2011년) 핵발전 사고에서 보듯 핵발전은 인류를 위협하는 대형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오염수 투기는 이런 사고의 마지막에, 우리가 체감하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현상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핵발전소 밀집도는 세계 1위, 현재 25기가 운영 중이고 3기가 추가로 건설 중이다.

부지별 핵발전소 밀집도와 국토면적당 설비용량과 주변 인구 수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게다가 최근 만들어지는 핵발전소의 운전허가기간은 무려 60년. 이에 더해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착수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핵발전소 6기를 신규로 건설하고 재생에너지 생산은 줄이는 내용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환경·건강 피해,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도시로 보내기 위해 세워지는 송전탑 근처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준위핵페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보관할 곳이 없이 임시로 쌓여만 가는데 핵발전을 멈추기는커녕 확대한다니, 무책임하기로는 일본의 오염수 투기와 다를 바가 없다. 모든 핵발전소는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를 바다에 방류한다는 점에서(일본의 오염수처럼 원자로에 직접 닿은 것은 아니지만)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들은 오염수 투기에 가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미국 뉴욕주에서는 방사성액체폐기물 방류 금지법, 이른바 세이브더허드슨 법이 통과됐다. 60년 간 지역 전력 공급의 4분의 1을 담당하다, 9.11테러와 일본 핵발전소 사고를 통해 2년 전 폐쇄를 결정한 뉴욕 주의 핵발전소가 사례가 됐다. 핵발전소 해체작업을 진행하던 에너지장비업체가, 그간 냉각수로 썼던 물 5천 톤을 뉴욕의 허드슨 강에 방류하려 하자 뉴욕주 정치인들과 지역사회가 '다음 세대를 위해 허드슨강을 보호하자'며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이 핵발전소 규모는 후쿠시마의 4분의 1 수준이고, 오염수가 아닌 냉각수임에도 그로 인한 환경, 주민 건강에의 영향을 간과하지 않은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핵발전을 멈추고 적극적으로 해체작업을 진행하고, 환경과 주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은 뉴욕주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탈핵을 결단할 수 있다면 오염수 투기도 중단할 수 있다. 그에 앞서, 방사성오염수가 생긴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탈핵으로 한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물’은 엎질러졌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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