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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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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 윤종혁
  • 승인 2023.09.04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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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염색으로 첫 개인전 개최한 주현숙 작가

천연염색 작품을 선보인 주현숙 개인전이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시민공유공간 ‘아문벗길’에서 열렸다. 작가라는 호칭이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그녀는 누구나 그러했듯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밤낮으로 일 했다. 눈 깜짝할 사이 나이 60세가 됐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 나는 진정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마음이 아파왔다.

10여 년 전 홍성군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 여성 취미 활동을 위한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홍주골전통식품 주현숙(70) 대표는 바쁜 시간을 뒤로 하고 무작정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잊고 지내던 웃음을 되찾았다. 그림에 푹 빠지면서 가죽공예를 배우게 됐고, 천연염색의 세상을 알게 됐다.

광천읍 소암리에 위치한 홍주골전통식품은 새벽부터 떡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떡을 만들면서 천연염색을 배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배려가 없었으면 천연염색을 계속해서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의 배려 속에 갈산면에 위치한 손끝세상 이은련 대표의 지도 아래 천연염색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시간 속에서 우려낸 하나뿐인 나만의 ‘색’

천연염색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섬유를 물들이는 전통공예의 일종이다. 천연염색은 내가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수없는 반복 작업이 필수다. 모든 과정은 사람 손으로 이뤄진다. 재료의 성질을 잘 헤아리지 못하면 잘못되기 쉽다. 사람 손으로 색을 빚어내야 하고, 시간을 통과해야 진정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천연염색을 하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간다. 우선 매염을 해야 하다. 섬유를 염색할 때 섬유에 쉽게 스며들게 화학처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귀찮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울이나 실크 등은 명반을 사용한다. 매염이 끝나면 염료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염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색이 달라질 수 있다.

염료는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주로 사용한다. 감잎과 도토리, 치자, 울금, 치자, 쪽 등이 대표적인 재료이다. 주현숙 씨가 제일 좋아하는 재료는 ‘쪽’이다. “어려서부터 보라색 계통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쪽으로 염색을 하면 그렇게 색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시간 속에서 우려낸 하나뿐인 나만의 색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자신만의 독특한 문양과 색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염색할 섬유를 염료를 탄 물에 담가 색을 들일 때도 접거나 구기면 예상치도 못한 세상에 하나뿐인 문양이 만들어진다. 건조 과정에서도 햇볕에 말리느냐, 그늘에 말리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색의 농도에 따라서도 염색 후 색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주현숙 씨는 “정답이 없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세계”라고 표현한다.

주현숙 씨가 천연염색을 통해 만든 작품들. 주 씨는 쪽빛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염색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주현숙 씨는 자체 공방이 없기 때문에 손끝세상에 가서 천연염색을 해야 한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염색을 하다 보면 다음날 떡을 만들어야 하는 것을 잊을 때도 있었다. 천연염색이 됐건, 떡이 됐건 온전히 하나에 집중해야 하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하다 보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도 입가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인 천으로 옷을 만들고, 스카프를 만들고, 작품을 만든다. 주위에서는 작품을 팔라고 성화지만, 주 씨는 아직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팔 마음이 전혀 없다. 자신이 만든 작품이 아직 ‘미완성’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작품은 누군가에게 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배우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습니다.”

염색을 해서 옷 한 벌을 만들려면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주현숙 대표의 설명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쭉 천연염색을 할 생각이다. “염색을 하고 난 후 어떤 색이 나올까 기다리는 그 순간은 천연염색을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인 것 같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희열감 때문에 천연염색을 계속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민 끝에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내내 ‘전문가 아닌 사람이 전시회를 해서 어떡하나’라며 많이 부끄러웠지만 전시회장을 찾은 사람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제가 만든 작품을 전문가들이 보면 웃을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제 자신이 대견스럽습니다. 전시회 기간 동안 나를 위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새로운 도전을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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