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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원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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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원두막
  • 이상헌 홍성예총 지회장
  • 승인 2023.08.2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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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바다나 계곡으로 피서를 간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에 몸을 맡기면 무더위는 어느새 사라진다.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양말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조금만 있어도 발이 시려 발을 빼면 시원함이 극치에 오른다. 수박 한 통을 계곡물에 담갔다가 먹으면 금상첨화이다.

전원주택을 지은 귀농, 귀촌한 사람들은 잔디밭 모서리에 원두막을 지어놓는다. 굵은 기둥과 서까래에 니스를 칠하고 인조 볏짚으로 지붕까지 한 원두막이 버티고 서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손재주가 없는 귀농인들은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 원두막을 트레일러에 싣고 와 미리 준비한 곳에 놓기만 하면 된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철제 파이프를 사다가 조립을 한다. 목재상에서 송판을 사다가 타카로 박아 마루도 만든다. 고풍스럽거나 시골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좀 그렇다. 단지 그늘이 있고 바람이 잘 통하여 가족이나 친구들이 오면 모여 있는 장소로 이용한다.

예전에는 이맘때, 시골에 가면 여기저기 원두막이 눈에 띈다. 그래도 금방 참외나 수박을 팔아 현금화할 수 있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친구네도 참외와 수박을 심었다. 친구 아버지는 목수라서 뚝딱뚝딱하면 금방 원두막을 지었다. 대체로 참외를 심어 원두막이라 부르지 않고 참외막으로 불렸다. 네 개 기둥을 박고 서까래를 걸치고 이엉을 두른다. 맨 꼭대기는 몽골의 파오처럼 뾰족하게 짚단으로 처리하여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였다.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다리로 1미터쯤 올라가면 마루 대신 나무를 잇대어 놓고 그 위에는 폭신거리도록 호밀짚으로 멍석을 만들어 깔았다. 햇볕이 들지 않도록 호밀짚으로 만든 멍석으로 가림막을 만들었다. 가림막은 둘둘 말아 올려 사방을 망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낮에는 친구 아버지가 참외막을 지키고 밤중에는 친구가 지키며 참외를 팔았다. 혼자 지키려면 무섭다고 함께 있자고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참외를 사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가 처녀와 총각이었다. 처녀, 총각의 연애 장소가 원두막이었다.

으레 아가씨들은 돈을 내지 않고 허세 떠는 총각이 냈다. 돈을 잘 내 참외를 사주는 총각이 제일 먼저 장가를 갔다. 공부한다며 호롱불을 켜 놓고 가져간 책은 보지 않고 처녀, 총각들의 구수한 이야기에 혼을 빼앗겼다. 열두 시가 넘으면 잠이 쏟아져 잠이 든다. 불을 켜놓아 잠을 자지 않는 것처럼 위장한다. 하지만 서리하러 오는 청년들은 잠을 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민한 내가 친구를 서리꾼이 왔다며 깨운다. ‘누구여요’를 몇 번 외치면 도망을 간다. 내쫓으면 그만이지 쫓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는 서리해가도 묵인했다.

돈 없는 사람과 먹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인 셈이었다. 돈으로 기부한 것이 아니라 현물로 이웃에게 희사한 것이다. 지금이야 절도죄로 수박 한 통 서리했다가 밭 통째로 물어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전에는 가난했지만 서로 나눠 먹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었다. 요즘 시골 지나다가 내가 그리는 원두막을 볼 수 있을까. 유년 시절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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