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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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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장마
  • 이상헌 홍성예총 지회장
  • 승인 2023.07.15 0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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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가뭄과 장마일 것이다. 이중 가뭄은 농부들을 애태우지만 일반인들은 그리 와닿지 않을 것이다. 가뭄으로 채소가격이 폭등할 수 있어 도시민들에게 영향을 주기는 한다. 지금이야 경지정리가 되고 관개수로가 개설되어 가뭄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또 관정의 개발로 손쉽게 물을 끌어 스프링클러를 가동하여 가뭄에도 작물을 잘 재배하고 있다. 참 좋은 시절에 농사를 짓고 있다.

전에는 가물이 들면 개천 바닥을 삽으로 파 물길을 내고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을 깔아 논까지 물길을 낸다. 하지만 냇물이 바닥을 보이면 논 가까이에 웅덩이를 판다. 송사리와 미꾸라지가 다 모여든다. 부잣집은 수차가 있어 수차 위에 발판을 밟아 물을 끌어 올린다. 가난한 영세 농부는 용두레로 물을 퍼 논에 모를 심는다.

용두레가 없는 사람들은 네모난 페인트 통을 잘라 양쪽에 끈을 달아 둘이서 힘겹게 물을 퍼 올린다. 한참을 퍼 올려 퇴비장 넓이에 물이 번지면 모를 심는다. 간신히 모내기 마치면 보풀 등 잡초가 자리 잡고, 거북 등처럼 갈라진 틈에 우렁이가 간신히 숨을 쉰다.

그나마 냇가 가까운 논이나 물이 있어 모내기하지만, 계단식 봉천답은 장마가 져야 비로소 모내기한다. 장맛비가 억세게 내려도 농부들은 반갑기만 하다. 모내기를 언제 할지 기다리며 모판의 웃자란 모를 낫으로 몇 차례나 잘랐지만, 장딴지에 닿을 정도 키가 자라있다. 모를 찔 때면 비를 맞으며 웃자라 휘어진 모를 흥겹게 심는다.

비옷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대나무 삿갓이나 밀짚모자에 도롱이를 걸친 사람이 몇이 있을 뿐, 흠뻑 비를 맞으며 모내기를 한다. 물 만난 맹꽁이는 울어 농부들의 피로를 가시게 해준다. 새참으로 가져온 국수는 퉁퉁 불어 빗물과 함께 먹어도 맛만 있다. 하늘바라기논을 가진 농부는 비 맞으며 자기 일해주는 이웃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집에 오면 극성을 부리는 모기떼를 쫓기 위해 모깃불을 놓아야 한다.

둑에 있는 쑥이랑 개망초 등을 베어 와 마당과 외양간에 모깃불을 피운다. 풀이 젖어 모깃불을 피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헛간 옆에 쌓아 놓은 보리 짚 더미 속을 파헤쳐 좀 마른 보리 꺼럭을 한 삼태기 담아와 모깃불을 지핀다. 마당과 외양간의 모기는 이리저리 이동한다. 지금처럼 모기장이 없던 시절이라 화로에 모깃불 한 삽을 넣고 방으로 들어가 옷가지로 휘휘 저으며 방 안에 있는 모기를 문밖으로 내쫓는다.

잠자기 전에 모기와 파리를 죽이기 위해 독한 파리약을 푸막기(모기나 파리 등 살충제액을 병이나 용기에 넣고 입이나 펌프로 불어 분사시키는 도구)로 뿌린 후 겨우 잠이 들었다. 빗물이 튀어 마루에는 흙탕물이 튄다. 마당에는 때 만난 지렁이들이 기어 다니며 그림을 그려 놓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어 에어컨에 시간 예약을 해놓고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잠이 든다. 방안에 습기가 많아 제습으로 돌려놓고 텔레비전을 본다. 계속되는 장마에 폭우까지 오는 오늘, 장마가 물러갔으면, 마른장마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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