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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산불 100일…임시주택 이재민 힘겨운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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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산불 100일…임시주택 이재민 힘겨운 여름나기
  • 이건주 기자
  • 승인 2023.07.15 0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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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잊혀져가는 이재민
불편함 많은 임시주택서 생활
“장마철 장화 놓을 곳도 없어”
서부로 487-65번지의 이재민 임시 조립식주택
서부면 이호리 산수동마을에 있는 이재민 임시 조립식주택.

서부면 산불 발생 100일이 넘었다. 지난 4월 2일 발생한 산불로 53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안타깝다고 말하는 이웃 주민은 어느덧 이재민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서부면 산불 현장을 둘러봤다. 서부면에 있는 산들을 둘러보니 놀라웠다. 완전히 새까맣게 탄 소나무가 아니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소나무도 많았다. 조립식 임시주택에서 살고 있는 31가구의 이재민 또한 소나무와 닮아 보였다. 산은 산대로 다시 숲을 이루기 위해 회생하고 있었다. 이재민 또한 희망을 부여잡고 일상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서부초등학교 우심관 앞쪽에는 좌회전을 해 진입할 수 있는 농로가 있다. 농로를 따라 1km이상 들어가면 산수동마을 487-65번지가 나온다. 서부면행정복지센터에서 보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재민 임시조립주택인 셈이다. 바닥에 깔려있는 시멘트 부분만큼이 전소되기 전 집의 원래 규모라는 점을 짐작게 했다. 시멘트 쳐진 바닥 위에 놓인 조립식 임시주택은 컨테이너 모양에 높이는 3.3m이고 건물의 면적은 27.84㎥로 약 8평 정도이다. 임시주택 안에는 방 1개와 거실 겸 부엌, 화장실이 있다. 전소된 집 크기보다 5분의 1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 옆에서는 비닐 멀칭을 해 심어놓은 들깨가 자라고 있었다. 한쪽 화단에는 여러 가지 꽃도 피었다. 임시주택이 놓여있는 뒷산 나무들은 산불 당시에는 까맣게 타 알아볼 수 없던 모습이었지만 현재는 완전히 타버린 소나무만 빼고 한두 가지에서 새싹이 올라와 살아나는 소나무도 일부 있었다.

산길을 따라 더 올라가니 사람 키만 한 바위가 보였다. 바위 앞에는 빨간 우편함이 세워져 있었다. 산수동 마을 487-92번지의 임시주택이다. 임시주택에 당도하기 전 집 앞에 심어진 대추나무와 연꽃이 산불이 나기 전 평화로웠던 전원생활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울긋불긋 꽃들이 피어있고, 나비들이 날아다녔다. 하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경은 임시주택 밖의 모습이었다. 조립식 임시주택이 있는 시멘트 쳐진 부지는 단조롭고 썰렁했으며, 휑해보였다.

비가 오는 와중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조립식 주택을 한참 바라 보다 차를 돌려 다시 서부초 우심관 쪽으로 나왔다. 우심관 옆 산수동 마을회관 앞에 사람들이 서있었다. 이재민에 대해 물어볼 요량으로 사람들한테 다가갔다. 가서 물으니 마침 65번지에 사는 이재민이다. 마을회관에서는 이재민 등을 위한 ‘초복' 삼계탕 점심식사 나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이재민은 여름 장마철에 불편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침대 하나가 못 들어갈 정도로 좁고 더워, 음식 하나를 해 먹으려 해도 어려움이 많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마을회관에서 삼계탕을 먹고 있던 서부면 주민 최창신 씨는 “군에서 지원해준 전자제품이 크기 때문에 조립주택에 미처 들어가지가 않아서 하우스에 따로 보관하는 이재민도 있다”고 귀띔했다.

서부면 양곡마을 입구를 지나 홍남서로길에서 바라본 산 
서부면 양곡마을 등 곳곳에서 불에 타서 죽은 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회관에서 나와 서부중학교를 지나서 이호리 527번지 인근을 둘러봤다. 산 밑에 집 한 채가 새로 지어지고 있다. 조립식 건물로 보였지만, 규모는 있어 보였다. 이호리에서 나와 얼마쯤 가다 보니 양곡마을 표지석이 나왔다. 양곡마을 홍남서로 길을 따라가다 보니 포크레인 두 대가 마을 중간 산 아래서 베어진 죽은 나무를 옮겨놓고 있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양곡마을은 산도 더 황량하고 볼품없었다. 까맣게 타 죽은 채로 남아있는 나무 옆에는 산불 이후 사람 키만큼 땅에서 자라난 잡초만 무성했다. 불 타 죽은 나무를 베어낸 민둥산은 산사태에 취약해 보였다.

양곡마을 길 중간 쯤에서 베어진 나무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포크레인.

좀 더 길을 가다보니 ‘규민 농장’이 나왔다. 규민 농장 안채는 반만 타 반파 집에 해당했다. 반파된 집은 그을음 냄새가 심해 사람이 살기 힘들 것이라는 이웃 주민의 말이 있었지만, 반 만 탄 지붕 등은 애써 수리를 마친 상태였다.

양곡 마을회관을 지나 결성 쪽으로 좌회전을 하니 판교마을 표지석이 보이고, 조금 더 가니 묵동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묵동마을 앞에서는 홍성과 서부면을 오가는 280번 버스가 스쳐 지나갔다. 묵동마을을 지나니 결성면 후동마을과 원성호마을이다. 산불 당시에는 후동마을 등 결성면도 안전하지 않았었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에게 군이 지원해 준 금액은 주택 전소의 경우 약 8000만원 정도이다. 반소는 절반 수준이다. 최근 자잿값이 크게 올라 최소 1억은 돼야 최소한의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래도 이재민은 각계각층에서 모인 성금 등의 지원에 마음의 위안이 됐다며 “감사할 따름”이라는 반응이다.

이재민은 단톡방을 만들어 정보도 교환하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단톡방에서는 공간이 좁아 누구랄 것도 없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큰 불편은 차양막과 비가림막이다. 조립식 주택에 옷 하나를 걸 수 있는 곳이 없다. 논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장화나 입었던 옷가지를 걸어둬야 하는데, 차양막이 없어 요즘 같은 장마철에 비 맞기 십상이다. 비 맞지 말라고 비닐로 씌워두면 쉰내가 코를 찌른다.

이재민들은 군에 차양막과 컨테이너, 마당 데크 설치 허가를 정식으로 건의할 예정이다. 이재민 정진학 씨는 “농기구 둘 곳도 필요하고, 임시주택의 실내가 좁아 밖에 테이블이라도 놓고 싶어도 차양막이 없어 놓을 수가 없다”며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 일에 안 된다며 법만 앞세우지 말고 지극히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군에서 허가만이라도 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재민은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는 가운데, 장마철까지 겹쳐 해충 피해도 걱정거리다. 군에서는 방충망 설치를 언급만 하다가 끝내 설치해주지 않았다. 결국 거동이 불편하지 않거나 자동차가 있는 이재민은 직접 방충망 설치를 마쳤다. 하지만 이동이 취약한 이재민은 방충망도 없이 파리·모기와 싸우며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에어컨을 켜고 살다 보니 습해서 환기를 자주 해야 하는데 방충망이 없어 해충을 피할 길이 없다.

양곡마을 함수일 이장은 “불편 없이 산다고 말하는 것은 인사치레인 것 같다”며 “장마가 오고 있는데, 마을에 산을 끼고 있는 집들이 많아 산사태나 폭우 피해 등이 우려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4월 2일 서부면 중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53가구가 불에 타 91명의 이재민과 서부면 전체 면적의 26%에 해당하는 약 1340여ha의 산림 피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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