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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강함은 총·칼 힘이 아닌 국민 ‘정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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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강함은 총·칼 힘이 아닌 국민 ‘정신’에 있다”
  • 이건주 기자
  • 승인 2023.05.28 11: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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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역사 위해 ‘우리겨레 박물관’ 설립한 복기대 인하대 교수
복기대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전공 교수

금마면 출신인 복기대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전공 교수가 나라의 부국강병은 총·칼이 아닌 민족정신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갈산면에 ‘우리겨레박물관’을 설립한 복 교수는 민족정신 고취와 민족 문화 바로 알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다.

복 교수는 인생의 나침반이 돼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서 어렸을 적에는 부모가, 고등학교 때는 국어교사, 대학 때는 윤내현 교수, 중국 길림 요녕대 유학길에서는 임운, 왕리신 교수를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어린 시절의 부모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시골에 사는데도 교육에 열의가 많았다. 부모는 사달라는 책은 전부 사줬다. 당시 한글을 띄엄띄엄 읽던 어머니는 한글 고전 소설을 읽어주곤 했다. 중·고등학교 방학 때면 당시로서는 학생에게 적지 않은 5만원의 용돈을 주면서 여행을 다니라고 북돋웠다. 

고등학교 때는 김소영 국어교사를 알고 나서 “루소와 카뮈를 읽었다”며 “책을 통해 알게 된 세상이 벅찼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에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김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홍주고등학교 졸업 후 단국대 사학과 합격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그의 서울 생활은 특별했다. 
복 교수의 대학생활은 말 그대로 공부 광이었다. 어느 정도 공부에 몰두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밤늦게 나왔는데, 어렸을 적 맡았던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끝에서 나는 걸 보고 계절이 바뀐 것을 알았다고. 그야말로 사계절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공부에 몰두했다. 4년 동안 부친이 사 준 검정 구두 한 켤레와 겨울 검정바지 하나로 대학생활을 버틸 정도로 오로지 관심 있는 것은 역사 공부뿐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국내에서 학위를 따 역사학자로써 편한 길을 갈 수 있었음에도 편한 길을 버리고 우리 역사, 우리 정신을 찾아줄 수 있는 고증을 찾기 위해 중국 유학의 길을 떠났다. 중국 유학에서의 생활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가난이 무엇인지 알았고, 처절히 느껴봤다”며, 없는 돈에 우리 역사 찾기에 전념하다보니 중국에서의 석박사 과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길이었다고. 당시 실력으로는 북경대 학위를 딸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이 됐지만, 우리 한민족사를 찾기 위해서는 길림성 요녕대가 필요했다는 것. 요녕대 석사과정에서 그는 수석 졸업했다.

그는 중국에 있으면서 한민족의 고도 문명을 증명할 수 있는 사료를 찾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비도 아낄 수 없었다. 한 번은 남만주 요녕성 인근의 천문 관측 유적지를 한국으로 가져올 방법이 없어 한 번의 드론 촬영비로 300만원을 지불해야 했다. 요녕성 조양시 건평현 우하량이라는 지역에 있는 천문 관측 유적지는 기원전 3500여 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복 교수는 “미국인과 한국인은 남을 도울 때 계산하지 않는 같은 점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며 “역사인식에서 미국인과 한국인은 다르다. 일본이 조작하고 중국이 동조한 왜곡된 역사를 우리 사학자들이 동조하는 현상은 역사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북아 평화를 깨트린 것은 모두 일본 때문”이라며 “역사의식이 잡혀 있으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울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며 민족적, 정신적 자신감을 강조했다.

복 교수의 정신문화 찾기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력을 알아주고 있다고. 최근에는 서울 법대 89학번 동기 20명이 ‘우리겨레 박물관’에 와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정신적으로 1등 국민이 돼야 세계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며 “국제법상 망명이 가능할 정도로 정부에 모질게 당했지만, 내 나라 내 땅에서 살 것”이라며 “홍성에는 김좌진, 한용운, 남구만이 있고, 홍주 의군이 있어 왔다”고 박물관 조성 배경을 밝혔다. 

한편 복 교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인해 고등학교 때부터 특별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왔는데, 김우중 회장과 백낙청,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 등과 친분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과 교류하며 국가와 민족, 인생관과 국가관, 민족정신을 키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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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23-06-12 11:27:13
훌륭한 분이십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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