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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게 옳고 그른지 사유할 능력과 책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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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게 옳고 그른지 사유할 능력과 책임을 바란다
  • 백진숙 혜전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3.02.17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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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 누군가는 서양 축제 즐기는 매국노들,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닌데, 어렵게 낸 세금인데 왜 거기다 쓰나, 놀러가다 죽은 사람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냐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소수가 아닌 다수라는 점이다. 이들 악플러들은 생존자마저 죽였고,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직면하기 어려워 텔레비전 화면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네들을 절망하게 한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면 바로 이런 것 일게다. 악은 상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편향적 뉴스, 사고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부 게시글, 입에 담지 못할 악플을 달고 있는 것은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사상을 위해 댓글을 달수도 있고, 다들 욕하니까 욕했을 수도 있고, 그저 혐오가 재밌었을 수도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역사상 악명 높은 유대인 학살자이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공격심보다 그저 출세하기 위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했을 뿐이다. 적어도 아이히만의 생각은 그랬다. 평범한 인간도 이처럼 극도의 악인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제대로 된 비판정신 없이 상부의 명령에 맹종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표본’인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요즘 유튜브나 TV에 한국 문화를 체험하거나 이민 와서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등장한다. 한국에 긍정발언을 많이 하는 이들은 카페 테이블에 고가의 전자제품을 두고 화장실 가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하고, 한국의 치안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밤에 여자가 혼자 다닐 수 있는 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식이다.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유럽에서 온 외국인들도 그런 말을 종종 한다. 그 나라의 치안이 얼마나 엉망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선뜻 동의하긴 쉽지 않다.

CCTV가 있어도 혼자 있는 노약자나 여성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나 도로에서 시비가 붙으면 가차 없이 흉기를 꺼내 폭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근엔 길에서 접촉 사고 난 택시기사와 여자친구를 스토커 살인하는 사건도 있었다. 우리나라 흉폭한 사건사고도 사실 셀 수가 없다. 범죄를 넘어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한 나라인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멀리가지 않아도 8년이 지난 세월호 사고가 있고, 이렇게 이태원 참사가 있다. 그날 이태원 골목엔 수십만 명이 있었고, 위험을 감지한 시민들이 꼼짝 못한 채 구조요청을 하고 있었다. 차량 통제와 질서유지 등 안전과 관련한 원칙만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 일각에서는 이런 참사를 정치화하지 말라고 한다.

정치는 국회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삶을 지켜내는 것도 정치가 할 일이고,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와 법을 더 탄탄히 하는 과정에 정치가 빠질 수 없다. 이태원 참사에는 분명 책임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무책임한 주장대로면 등산가서 실족하고 부상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막대한 비용을 들여 헬기를 띄우고, 많은 구조대원들이 험난한 산을 올라가 구조 활동을 하는 행위는 필요치 하다. 단 한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국가 시스템은 작동하는 게 정상이다.

이태원 참사자 분향소 설치에 또다시 유가족과의 마찰이 있었다. 세월호 때는 광화문에서 가방에 노란 리본만 있어도 불심검문으로 가방을 뒤지기도 했다는데,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면 철저한 반성아래 유가족과 시민을 보호하는 게 맞다. 국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유할 능력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게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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