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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기억에서부터 시작한다-가영이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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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기억에서부터 시작한다-가영이를 추모하며
  • 최선경 홍성군의원
  • 승인 2023.01.21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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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우리 누구나 살면서 뜻하지 않은 재난과 사고를 마주할 수 있다. 이번에 운 좋게 피해갔을 뿐 누구나 참사의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깊은 슬픔 앞에서 함께 애도하고, 연대하는 길만이 산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우리 지역에, 그것도 아주 가까운 지인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스무 살 가영이는 아주 밝고 씩씩한 청년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며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학 자금을 모았다. 애써 모은 1000여 만원은 결국 가영이의 묫자리 비용으로 쓰이게 됐다며 엄마는 영정 사진을 붙들고 통곡했다.

지난 12일, 홍성에서는 군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리고 추모문화제를 열어 가영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우리 젊은 청춘들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씌워진 참혹한 오명을 벗겨주는 것도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인 것 같아 힘을 보탰다. 이름도 영정도 없이 잊혀져야 했던 가영이를 떳떳하게 보내 주고 싶다는 가족들의 바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 주민들은 ‘돈 많은 애들이 놀러 가서 죽은 걸 가지고 유난을 떤다’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손가락질까지 해댄다. 수많은 비난과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분들에게 자제를 부탁드린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고통 가운데 있는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해 앞으로 그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자고 말이다.

유가족들은 단지 희생자들이 어떻게 희생됐는지, 시신 수습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장례식장에 안치되는 과정은 어땠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며 진상을 알아야 가족들을 편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앞집 개가 죽어도 위로를 하는데 하물며 159명 자식들이 죽었는데…’라는 유가족의 이야기는, 국가가 어떤 모습으로 이태원 참사를 마주했는지 잘 알려준다. 그렇다. 이태원 참사 당시 제대로 기능했어야 할 국가는 없었고, 참사 이후의 추모와 애도 과정에서도 국가는 무책임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공적 시스템의 허술함에 대한 절망, 책임 회피에 급급한 이 정부 고위직들에 대한 분노,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부재는 2차 가해로 이어졌다. 해가 바뀌어도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조치는 요원해 보인다. 마음껏 애도하지 못하는 분위기 가운데 피해를 당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도 잊히고,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와 구조 과정에서 정신적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고통도 묻혀버린 채 시간이 지나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 애써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의 연대는 중요하다. 이태원 참사 현장의 사진을 SNS에 올리고 피켓 시위 등을 하는 이유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참사가 남긴 상처를 보듬고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적 애도를 위해서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사과와 진정한 반성,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유가족들의 고통에 함께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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