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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선거, 조합에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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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선거, 조합에 돌려줘야 한다
  • 홍성신문
  • 승인 2023.01.0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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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조합장 선거가 본격화되고 있다. 홍성에서도 32명이나 되는 출마예정자들이 협동조합의 리더를 자임하고 나섰다. 그런데 선거관리위원회가 위탁처리하고 있는 현행 조합장 선거는 많은 고민을 갖게 한다.

농협, 수협, 산림조합의 조합장 선거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 이 법은 2014년 6월 제정돼 그 해 8월부터 시행됐다. 특히 이 세 조합은 ‘의무위탁선거’ 대상으로 지정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주적으로 결성한 경제적 단체가 스스로의 대표 선출을 국가의 관리 감독 속에서 치르는 이상한 일이 벌이지고 있다.

더욱이 큰 문제는 이 법의 세세한 규정들이 조합원의 투표권 행사 자유와 선택의 폭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이 허용하는 선거운동은 후보자 본인, 단 한 명만 14일 동안 할 수 있다. 운동방법도 선거공보와 벽보, 명함, 전화, 어깨띠와 윗옷 등이 전부이다. 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거나 메일을 전송하는 방법도 있으나 조합원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접근하기 쉽지 않은 방법이다.

전화로 직접 통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는 방법은 그래도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음성, 화상, 동영상은 안 된다. 시간도 오후 10시 이후부터 오전 7시까지는 할 수 없도록 세밀하게 옥죈다. 더 큰 문제는 후보자가 조합원의 전화번호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선거인명부를 열람할 수는 있으나 전화번호와 주소는 확인할 수 없다. 조합원 명부를 볼 수 있는 현직 조합장과 비교해 치명적인 약점일 수밖에 없다. 조합별로 조합원이 많게는 4000~5000명에 달한다. 조합원수가 많거나 관할 지역이 넓을수록 도전자에게 불리하다. 도전자들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이다.

현 조합장은 총회나 이사회 등을 통해 업무운영 결과를 공개하고 사업계획을 발표하며 자연스럽게 소견과 정책을 홍보할 수 있다. 조합 건물 안에서는 명함도 돌리지 못하는 규정에 비교하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선거일 당일 투표소에서 10분 이내의 시간으로 후보자를 소개하거나 소견을 밝힐 수 있으나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선거방법은 도전자에게는 넘어서기 힘든 담으로, 조합원에게는 선택지를 좁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된다. 선거일 7~8일 전에 도착하는 선거공보가 사실상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 홍성군 1년 예산에 버금가는 수 천 억 원의 재산을 관리하고 수 천여 조합원의 생존과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을 알음알음의 방법과 간단한 인적사항 몇가지로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다.

위탁선거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조합 자체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위탁선거를 강제하게 된 데는 오랜 논란거리인 ‘돈 선거’가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도 50만원을 주면 당선되고 30만원만 주면 떨어진다는 ‘오당삼락’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협동조합이 자주적 선거권과 선거관리권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오명에서 벗어나는 게 첫 번째 과제이다. 이번 선거부터라도 돈에서 자유로운 선거를 치러야 한다. 돈 쓰는 후보자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신고하고 표로 심판하길 바란다.

더불어 후보자가 자신의 소견과 정책, 철학, 조합 운영에 대한 전망 등을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 방법을 조합 스스로가 만들고 실천하면 좋겠다. 조합 자체적으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있다. 이곳에서 후보자와 조합원, 지역민까지 모두 불러 토론하자. 합동으로 연설하게 하고 질문도 받게 해야 한다. 누가 적임자인지 얘기나 들어보자.

나아가 관련법의 개정에 나서길 주문한다. 조합과 조합원의 자주적인 공정선거 실천을 무기로 국회의원을 강제해 내면 된다. 법을 고치지 않고는 자주 선거관리권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스스로의 협동으로 이겨내 키워 온 협동조합이다. 후대에까지 협동조합의 꽃인 선거를 국가에 위탁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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