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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아름다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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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아름다운 눈물
  • 임경미 독자
  • 승인 2022.11.14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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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그동안에 수많은 크고 작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눈물의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의 일이다. 바로 어제 토요일 민규는 피아노 콩쿨에 처음 참가했다. 초등 3학년 자폐아. 피아노 시작한지는 2년 쯤 되어간다. 매일 활동보조 선생님이 학교가 끝날 때부터 이동을 도와주신다. 민규는 피아노를 배우는 거 외에도 언어치료와 장애인센터에 운동을 다닌다.

한 달 두 달을, 콩쿨 곡을 위해 준비했다. 제목은 ‘엘리제를 위하여’. 원곡은 상급 수준이어야 하지만 민규는 기초의 쉬운 악보를 보았다. 자폐아 특성상 집중하는 시간이 워낙 짧다보니 어르고 칭찬을 번갈아하며, 혼내기도 하고, 잘하면 상으로 아이스크림 등을 주며 반복 연습을 시켰다.

콩쿨이 시작되고 사회자는 지시사항을 얘기한다. 주위가 조용해 달라는, 연주 시작과 끝의 인사는 생략한다는, 그리고 아무리 잘 쳐도 박수를 치지 말라는 등의 전반적인 규칙들을 미리 말해준다. 아이들은 대기실에 있다가 자기 순서가 되면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무대로 걸어간다. 처음 무대에 서보기도 하고 대기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있어 보는 자리가 민규한테는 어떨까? 과연 다른 아이들처럼 조용히 앉아서 자기의 순서만을 초초히 기다릴까?

역시나 민규는 아니었다. 평소처럼 의자에 삐딱하게 앉고는 두발을 허공에 차기도 하는, 무대에서는 연주가 한창 진행되는 아주 조용함속에 민규는 가만히 있는 가 했는데 옆자리에 있는 처음 본 또래 여자이이의 이름표를 보고는 큰소리로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며 파이팅을 외쳤다.

기분이 묘했다. 내가 민규에게 평소 연습 때마다 자신있게 치라며 파이팅을 말했던 게 생각났나보다. 그 자리가 힘을 내라는 그런 자리라는 걸 민규는 이해했던 거다. 기특해 보였다. 그치만 조용해야하는 자리서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는 게 순간적으로 당황한건 사실이다.

민규 호명을 하자 피아노로 걸어가 의자에 앉고 연습하던 대로 오른발로 페달을 대고는 연주시작. 어! 어쩜, 연습 때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첫 음부터 자리를 잘못 잡았다. 포지션을 중앙에서 쳐야하는데 당황을 했는지 한 옥타브 위에서 시작한 거다. 그러나 다행히 곧 알아 차리고 다시 맞는 음들을 쳐낸다. 그렇지만 삐그덕이다. 매끄럽지 못하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속이 탄다. 연습 때 실수가 전혀 없는 부분을 그리 하다니. 그러나 곧, 하던 대로 무난히 곡을 이어간다.

대부분 콩쿨의 러닝타임은 1분 30초, 심사위원들은 민규의 곡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만 치라는 사인을 보낸다. 종을 친다. 땡~ 참가자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 치던 곡을 끝내고 일어나서는 대기실로 다시 들어간다. 우리 민규, 땡 소리가 뭔지 알 리가 없다. 내가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하다. 나는 이번 콩쿨 곡이 길지 않기에 중간에 끊기보다는 완성해야 된다는 생각에, 언제나 끝까지 연습을 시켰다.

종소리가 나도 민규가 곡을 이어가니 사회자가 민규한테 가서는 그만 쳐도 된다는 말을 하는거 같다. 민규는 사회자의 말소리가 안 들린 걸까? 준비한 곡을 여전히 친다. 사회자는 자기 자리로 들어간다. 민규가 곧 그만 칠거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렇지만 여전히 민규는 진지하게 치고 있다. 사회자는 두 번째로 다시 무대로 나와 민규가 치고 있는 데로 다가간다. 아마 그만해도 된다는. 그러니 그만 치라고 또 말했을 꺼다.

민규, 사회자의 그러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 안하고 곡의 끝부분까지 완주하고서야 피아노에서 천천히 손을 땐다. 객석에서는 웅성웅성 박수가 터져 나온다. 민규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아마도 지켜본 이들은 아는 듯 했다. 앞의 참가자 누구한테도 보내지 않은 박수를 우리 민규가 성황리에 받게 된 거다.

콩, 쿵 나의 심장이여~ 연주를 마치고 박수를 받고 있는 민규를 본 순간, TV나 영화 속에서 이런 감동의 찰나에, 주인공 곁에서 어시스트가 남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생각났다. 그랬다, 바로 그러함이 나한테도 연출되었던 거다. 그때의 가슴 벅차게 소리 없이 뺨으로 흘렸던 눈물. 그거, 참 행복하고 아름다운 눈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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