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많은 아이를 만났습니다. 10년 넘게 만나면서 어떤 아이가 바람직한 아이일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똑똑한 아이일까? 아직은 지식의 나열인 아이를 답으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기표현을 잘하는 아이일까? 이 역시 답이 되지 않았습니다. 발표력이나 자기표현은 고등학생이나 성인이 되어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으니까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를 만났습니다. 어른이 아이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봉사 활동이었습니다. 정해진 것은 없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봉사자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만들어 갔습니다. 저는 재미있는 그림책을 읽어주었고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이해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어느 날 아이와 동네를 걸었습니다. 그 아이가 지닌 남다른 능력을 보았습니다. “이 나무요, 우리 학교에도 있어요.” 같아 보이는 나무를 그 아이는 구별할 줄 알았고 어디에 있는지도 기억합니다. 길가에 있는 풀이며 꽃이며 하나하나 살피고 예쁘다고 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은 꽃보다 예뻤습니다. 예쁜 꽃을 보고 예쁘다고 할 줄 아는 아이가 바람직한 아이라고 답을 내렸습니다. 이 답은 점점 ‘정답’임을 확신합니다.
황인찬 시인이 글을 쓰고 이명애 그림작가가 <내가 예쁘다고?>를 출판했습니다.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떠세요? 짝꿍이 예쁘다고 한 말에 남자 주인공은 부끄러워집니다. 짝꿍이 예쁘다고 한 실체를 알고는 더욱 창피합니다. 곧 수업이 시작인데도 남자 주인공은 복도를 달려 나갑니다. 한참을 달리고 고개를 들어 보니 꽃이 있습니다. 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는 걸 그때 처음 압니다. 창피함은 사라졌습니다. 꽃을 보고 변화합니다.
제가 바라는 바람직한 아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아이입니다. 다시 그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예쁘다고?”, “응,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넌 너무나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