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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같은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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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같은 실마리
  •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
  • 승인 2022.09.24 13:5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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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37
<방바닥으로 떨어진 머리카락이> 박밤(지은이) / 이집트, 2022

나이가 들수록 빠지는 머리카락이 속상합니다. 청소기를 돌리고 깨끗한 방이다 싶은데 언제 떨어졌는지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습니다. 눈살을 찌푸립니다. 아끼던 머리카락은 내 몸에서 떨어진 순간, 하찮은 것이 됩니다. 떨어진 머리카락 입장에서는 버려지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람의 머리에 붙어 있을 땐 샴푸 향기도 맡을 수 있고 정성 들인 빗질도 받을 수 있지만 떨어진 순간부터는 쓸모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 주인공 머리카락도 이러했습니다. 바닥에 떨어졌지만, 루시 곁에 있고 싶어 한 가닥 선으로 맴돕니다. 이리저리 움직이고 여러 표정도 지어 봅니다. 드디어 웃는 표정에서 루시가 알아봅니다. 머리카락은 기뻤지만,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운명은 버려지는 것뿐입니다. 창밖으로 멀리 버려집니다.

머리카락은 황금 들녘의 추수를 바라보며 지푸라기와 낱알들이 들판을 떠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떠날 때가 되어 떠난 것이라고 자신도 이해합니다. 이때부터 달라집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고 한참을 웃습니다. 머리카락은 또 바라봅니다. 여러 줄과 선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이 하는 일도 봅니다. 많은 것들을 바라본 머리카락은 자기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루시가 알아본 표정 바로, 웃기입니다. 한참을 할 수 있는 웃기입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머리카락은 웃는 것만큼은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합니다.

살다보면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는 날이 많습니다. 잘 되는 일 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럴 때 바라보세요. 주인공 머리카락도 추수하는 들녘을 바라보며 깨닫습니다. 버려진 게 아니라 떠날 때가 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어렵거나 풀리지 않는 일 가까이에 있을 땐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채기도 힘들고, 내 모습을 바라보기도 힘듭니다. 바라보는 힘이 생기면 내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 주인공은 잘할 수 있는 것까지 알아냅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세요. 머리카락 같은 실마리가 나타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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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련 2022-10-01 10:31:32
정말 궁금해지는 그림책 이네요.
점점 더 떠나보내는 것에 무디어 지고
순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기네요.
한발 뒤로 물러서서 나를 보기 쉽지 않네요.
찬찬히 나를 다독여 바라봐야 겠습니다

김훈희 2022-09-27 06:26:24
떨어진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신선합니다~~!그리고 머리카락의 그 다음 쓰임이 궁금해 집니다! 늘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

유혜린 2022-09-26 08:59:40
"버려진것이 아니라 떠날때가 된것이라고." 이러한 맘 쉽지않은듯해요 나의 가슴에게 눈물을 미소로 넘기라고 할 때 필요한 말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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