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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순교자들의 시신 운구하던 기러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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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순교자들의 시신 운구하던 기러기재
  • 김정헌 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22.09.13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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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에 서려 있는 조상들의 숨결 8
오서산 기러기재는 청양과 광천을 이어주는 지름길이었다. 기러기재를 넘어와서 장곡면 신풍리를 경유하여 광천으로 향했다.

오서산은 해발 791m이며, 홍성군〮·보령시·청양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서산 바로 서쪽으로는 해발 424m인 아차산이 있다. 오서산 능선에는 옛날 장꾼이나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고개가 곳곳에 남아있다. 옛 시절 보령과 청양에서 광천장을 보기 위해 오서산 고개를 넘나들던 고개였다. 산 주변을 통과하던 고개에는 치열했던 삶의 흔적과 남겨진 이야기들이 많다.

오서산 기러기재는 청양과 광천을 이어 주는 지름길이었다. 기러기재를 넘어와서 장곡면 신풍리를 경유하여 광천으로 향했다. 고개 아래 장곡면 광성리에서 화계리로 물길이 길게 흐르는 모습을 보고, 물 따라 찾아다니는 기러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기럭재’, ‘안치(顔峙)’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광천장날마다 새벽에 불을 밝히고 기러기재를 넘어오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산 아래에서 보면 도깨비불처럼 반짝반짝 빛나며 내려왔다.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는 거꾸로 산을 오르는 불빛이 반짝였다. 기러기재를 넘어가면 청양군 화성면이다. 광천장을 보고 밤늦게 귀가하는 가족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 고갯마루에서 등불을 켜고 기다리곤 했다. 지금은 세월이 변하여 기러기재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사라지고 추억의 고개가 되었다.

기러기재 모습. 옛날 천주교가 심한 박해를 받던 시절, 홍주에서 순교한 천주교 순교자들의 시신을 운구하던 고개였다.

기러기재는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고개이기도 하다. 옛날 천주교가 심한 박해를 받던 시절, 홍주에서 순교한 천주교 순교자들의 시신을 운구하던 고개였다.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에 다락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다락골에는 병인박해(1866년) 당시에 순교한 순교자들의 줄무덤이 있다. 한 무덤 안에 여러 명의 시신을 함께 줄지어 묻었다고 하여 줄무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줄무덤 속에 묻힌 순교자들 중에는 홍주감옥에서 순교한 신자들도 있다고 전해온다. 순교자들의 시신은 오서산의 기러기재를 통해서 다락골로 운구해 갔을 것이다.

이외에도 오서산 능선에는 던목고개와 공덕고개가 있다. 던목고개는 ‘덜먹재’라고도 부르며 보령시 청라면과 광천을 이어주던 주요 통로였다. 던목고개는 오서산 서쪽과 아차산 동쪽 능선 사이를 가로지른다. 보령시 청라면과 홍성군 광천읍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기도 하다.

잘록한 능선 부분이 오서산과 아차산 사이에 있는 던목고개이다. 현재는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사라졌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던목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광천장날에는 던목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현재는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사라졌고 임도를 통해 등산하는 사람들이 가끔 이용한다.

장곡면 광성리 광제에서 보령시 청라면 금자동을 넘나들던 공덕고개도 있다. 광제마을에서 공덕고개까지 오르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 몇몇 기록에는 고개가 가파르므로 공들여서 넘어 다녀야 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장곡면 광성리 광제에서 보령시 청라면 금자동을 넘나들던 공덕고개 능선. 

하지만 공덕고개에 세워놓은 안내판의 설명은 다르다. ‘공덕’이라는 고개이름은 ‘병목안’이라는 자연동굴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속이 비어있다는 ‘공(空)’의 뜻을 담고 있어서 ‘공덕이재’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적혀 있다. 공덕고개도 사람의 통행이 거의 사라졌고, 백두대간 금북정맥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이나 약초 채취꾼들이 주로 사용하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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