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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기와 4전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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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기와 4전5기
  • 조종수 수필가
  • 승인 2022.09.1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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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는 뜻이며 ‘여러 번 실패해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얼핏 보면 이 말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자성어이다. 혹시 ‘7전8기’에 유래된 고사(故事)가 있는지 중국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전해오는 고사는 없고 단순한 성어(成語)이며 중국에서는 ‘운명이나 인생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좋은 의미의 말은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의 ‘바이두백과’를 검색해보니 ‘不断地颠簸、起落’, 즉 ‘끊임없이 흔들리고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뜻이고 ‘人的命运或局势激烈地沉浮起伏’, 즉 ‘사람의 운명이나 형세가 격렬하게 오르락내리락 변화 한다’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같은 단어를 두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석이 좀 다른 것 같다.

1970년대에 7전8기와 같은 뜻으로 4전5기라는 단어가 전국에 회자된 일이 있었다.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승리한 직후 라디오 중계팀이 연결해 준 전화로 어머니에게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을 하여 전국적인 유행어를 만들었던 프로권투 홍수환 선수가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리는 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타이틀 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에게 2회에 4번이나 다운이 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당시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은 홍수환이 질 것으로 확신하고 크게 낙담했는데 3회 들어 카라스키야를 폭풍처럼 몰아부쳐 KO시킴으로써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고 ‘4전5기’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대대적인 환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국적인 유행어를 2개씩이나 만들었던 그도 인생역정(人生歷程)이 마냥 화려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 챔피언이 되고 두 번째 타이틀 방어전에서 KO패, 챔피언 재도전에서 TKO패를 당했었는가 하면, 4전5기 이후 2차 방어전에서 TKO패로 타이틀을 잃은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며 그 내리막길을 ‘프로정신과 도전정신’이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4전5기로 승리했을 당시 전국에 생중계되는 TV 인터뷰에서 후원자에 대한 감사인사를 하지 않는 실수를 하였고 스캔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지원도, CF섭외도 원활치 않았으며 여러 상황이 꼬여 결국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 택시운전도 하였고 이런저런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순탄치 않았던 삶의 역정에 대한 이야기가 청중을 감동시켜 그를 일약 전국적인 스타강사로 거듭나게 했다. 특히 그가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하여 또 다시 최선을 다한 결과 방송해설과 강사,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말에 청중들은 그에게 큰 박수를 보내 주었다.

내가 아는 지인의 아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한두 차례 낙방을 하다가 높은 점수로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면접시험을 보고난 다음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고 한다. 질문에 그럭저럭 답변은 했지만 몇 개는 전혀 모르는 질문이어서 대답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그에게 면접시험은 공무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전문지식의 응용능력, 발표력, 발전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험으로 두세 문제 답변을 못해 불합격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이제 필기시험은 자신이 있을 터이니 만약에 낙방되더라도 면접시험만 1년 더 준비하면 되지 않겠냐고 홍수환 선수의 4전5기를 예로 들며 조언하여 용기를 가지게 해 준 적이 있다.

7전8기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는 뜻으로 쓰이던지 오르락내리락 하는 순탄치 않은 인생을 의미하던지 아무 상관이 없다. 누구에게나 좋을 때와 안 좋을 때가 있고 쉬울 때와 어려울 때가 있다. 지나보면 어려웠던 인생역정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얘기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열심히 해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는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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