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36 (목)
필라테스와 군대
상태바
필라테스와 군대
  • 홍성신문
  • 승인 2022.09.04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미경 청운대 교수

송나라의 시인 왕안석이 어느 봄날 소풍을 하다가 푸른 풀밭에 석류 꽃이 핀 것을 보고 시 한수를 지었다. 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 동인춘색불수다(動人春色不須多). 모두가 초록인데 붉은 점 하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봄 빛은 많을 필요가 없다고 감동을 표현할 만큼 색다른 돋보임을 추앙하였다. 홍일점과 마찬가지로 초여성 공간에 있는 남성을 일컫는 청일점도 색다르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학창시절 여고 앞에 남학생은 혼자 지나갈 수 없어도, 남고 앞의 여학생은 당당하게 지나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자들은 혼자라도 주목받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지 않지만, 집단의 문화에 익숙한 남자들은 주목받는 것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는 여초인 간호학과에도 남성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들 사이의 남성은 그 집단의 여성들 수준으로 변모하여 초식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젠더적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투명인간처럼 조용히 지내거나 남성들끼리만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혹시 조금이라도 남성성이 드러나기도 하면 음흉한 사람으로 취급될 수 도 있기 때문에 더욱 행위 양식은 조심스럽게 위축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여성 중심의 필라테스(Pilates)는 남성에 배타적이다. 필라테스(Pilates)는 재활과 자세 교정의 목적으로 신체 유연성, 근육을 발달시키는 운동이다. 최근에는 몸이 아프고 교정이 필요한 남성들이 많아졌다. 근력운동과 함께 스트레칭도 같이 하는 필라테스는 딱딱하고 유연함이 떨어지는 남성들에게 호감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주변의 남성들은 재활을 위해 필라테스가 좋다는 정보를 듣고 한번 참여했다가 민망해서 포기했다고 한다. 레깅스를 입은 주변 여성들의 신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투명인간처럼 건조하게 운동에만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중립적으로 운동만 해도 혹시 치한 취급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남자와 필라테스를 같이 한 후기를 보면, 60대의 남성 참여자의 시선이 불편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군대와 같은 초남성 공간에 여성들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 홍일점의 색다름의 의미는 젠더의 평등을 위한 의제로 변모하는 경향이 있었다. 남성 중심의 군대 조직질서에 여성의 규범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동안 여성징병제를 실행하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설문조사 결과 남성 응답자들은 대체로 여성 징병제에 부정적이었다. 흥미롭게도 여성 응답자들은 ‘남성이랑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거나 ‘유리천장을 깨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필라테스와 군대를 통해서 홍일점과 청일점들의 진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남학생들과 여학생을 동시에 지도하는 학교 공간에서도 이러한 진화과정을 읽을 수 있다. 여성들은 새로운 동네에 잠입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용적 가치를 탐색한다. 그런데 오히려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질서에 안주하거나 체면에 손상이 갈까봐 움추리고 역동적인 자기 이득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남성들도 실용적인 가치를 찾기 위해 가부장적 문화와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단단한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할 때가 되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