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유독 제 이름이 딱딱하게 느껴졌습니다. ‘ᄂ’이 두 번이나 들어서 여유 없는 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갑갑했습니다. 내가 내 이름을 짓는다면 ‘주’자를 넣고 싶었습니다. 같은 반에 제 이름과 한 글자 다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 이름에 ‘주’자가 들어갔습니다. 그 아이는 키도 크고 날씬하고 참 예뻤습니다.
영감님은 환갑이라는 늦은 나이에 자식이 생깁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 마음 가득합니다. 영감님은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스님은 목숨이 끝나지 않는 ‘수한무’라는 이름을 알려줍니다. 선비는 거북이, 농부는 두루미, 훈장님은 환갑을 삼천 번 지낸 사람 ‘삼천갑자 동방삭’을 알려줍니다. 영감님은 아들 이름을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지어버립니다. 줄여도 안 되고 대충 불러도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영감님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주’자가 들어간 이름, 주영이를 닮고 싶어한 제가 보였습니다. 영감님은 단 하나라도 뺄 수 없을 만큼 자식 사랑이 지나쳤습니다. 긴 이름으로 아들을 잃을 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영감님은 자식 사랑이 과한 본인을 깨닫습니다.
‘팥죽할멈과 호랑이’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같은 옛이야기를 여러 출판사에서 만들기도 하는데 김수한무이야기는 예외입니다. ‘소중애’만큼 탁월한 이름을 가진 글 작가를 만나지 못해서인가 봅니다. 소중애 글 작가는 본인 이름에 만족합니다. 의미 있는 발음으로 외우기도 쉽습니다.
이 그림책을 다 읽고 앞표지를 보며 느낀 점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한 초등학생이 말하더군요. “왜 김수한무 글자만 큰지 알겠어요.” 이야기를 다 아는 것 같지만, 모르고 있는 김수한무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소중애 글 작가의 맛깔나는 글도 일품이고, 이승현 그림작가의 개성 담긴 그림도 아주 재밌습니다. 등장인물이 살아서 춤을 춥니다. 주인공 이름을 리듬감 있게 불러 보세요. 덩달아 내 이름도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