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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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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 홍동면 박진화
  • 승인 2022.08.22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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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고 좋아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덩달아 좋다가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워킹맘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는 그래도 시간제 노동자로 하루 3~4시간만 일하면 되니 적어도 아이들 점심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다. 작은 아이가 나 없을 때 후라이팬을 태워 먹은 후로는 일하러 가면서 늘 아이들에게 다짐받는 것이 있다. 절대 엄마 없을 때 가스 불 쓰지 말 것, 문단속 확실히 할 것.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행여나 우리 집 일이 되면 어쩌나 하고 집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나는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시간제 워킹맘이다. 밖에서 마음껏 뛰어 놀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골로 왔는데 시골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방학 때 왜 밖에서 놀지 못하고 우리 아이들은 집에만 있게 된 걸까? 함께 놀 만한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골목에 아이들이 모여 해 질 때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나도 밖에 나가서 놀아라, 마트 가서 먹고 싶은 거 사먹어라, 하고 싶지만 시골에는 아이들이 놀 만한 곳도 갈 만한 곳도 없다. 제대로 된 놀이터가 없다 보니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누군가의 논과 밭 사유지를 넘나드니 저절로 밖에 나가는 걸 조심시키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읍내로 나간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자라는 아이도 재미있는 곳이어야지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을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골에선 기본적으로 친구를 만나든, 마트를 가든, 어디를 가든 걸어서 갈 만한 거리가 없으니 무조건 차로 움직이게 된다. 예전에는 30~40분 거리도 잘만 걸어 다녔는데 요즘 아이들은 너무 나약한 거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슬아슬 시골 차도를 걷다 보면 말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보행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땡볕 길은 저절로 걷는 걸 포기하게 만든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친구가 목마른 아이들은 혼자 친구를 만날 수 없으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차로 이동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좋겠지만 제대로 된 도보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 자전거 도로가 있을 리 없지 않겠는가?

시골 아이들에게는 이동의 자유가 없다.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사고 싶은 것을 사러 마트를 가려해도 모두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시골 아이들은 부모가 일하러 나가면 감옥 아닌 감옥에서 방학을 보내야 한다.

이런 사정은 비단 방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학해서도 이어진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5시가 넘도록 노는 걸 좋아하길래 ‘학교가 얼마나 좋으면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집에도 안 가고 놀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현실이었다. 아이들에게 친구와의 놀이는 밥과 같은데 학교를 나서면 친구와 놀 곳도 놀 명분도 없으니 아이들은 늦은 시간이 되어도 학교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방구뽕이라는 인물이 아이들을 위해 한 대사가 있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셋,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이 대사를 듣고 나는 너무나 벅찬 감동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은 학원과 공부에 찌든 도시의 아이들뿐 아니라 학교 아니면 놀 곳이 없어 방황하는 내가 사는 홍동지역의 아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요즘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춘다는 교육부 정책 발표와 방구뽕의 대사가 맞물리며 새까맣게 탔던 우리집 후라이팬처럼 내 마음도 새까맣게 타오르는 것 같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시골에 사는 우리집 아이들도 다른 집 아이들도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지금 홍동에는 나 같은 시간제 워킹맘도 농사일에 바쁜 가정도 안심하고 아이 맡기고 일 할 수 있는, 맡겨진 아이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그런 장소가 필요하다. 이것이 홍동지역에 지역아동·청소년센터가 생겨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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