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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리호 자전거 기억하시나요?…삼천이와 다양한 미션 수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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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리호 자전거 기억하시나요?…삼천이와 다양한 미션 수행 중
  • 강상규 수의사
  • 승인 2022.08.14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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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인생에게 말하다 10
3000리호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 삼척에서 첫 미션 라이딩을 했다. 삼척은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이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2년도에 한국전쟁 고아들을 돕기 위해 첫 번째로 어린이센터를 세웠던 곳이다.

3000리호 자전거를 기억하시나요? 기아자동차의 전신인 경성정공은 1944년에 설립돼 초기에는 자전거 부품을 만들다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2년 국내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하고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했습니다.

1979년에는 기아산업에서 자전거사업부만 분사하여 ‘삼천리자공’이 되었고, 1982년에 ‘삼천리자전거공업’, 1985년에는 기아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지요. 훗날 기아가 현대에 합병이 되었지만 삼천리자전거는 그대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때 완전 독립을 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독자 여러분께 여쭤보겠습니다. 3000리호 자전거를 기억하시나요? 3000리호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40대 그 이상의 연배일거라 생각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옛날 사람’ 인증되신거죠. 저는 자전거를 좋아하지만 특히나 옛날 자전거들을 참 좋아한답니다.

요즘에 나오는 전기자전거들은 자전거라고 인정하지도 않지요. 타는 사람이 엔진이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페달을 굴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진정한 자전거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제 개똥철학이므로 전혀 동조하셔야 될 의무는 없으시지만 ‘자전거가 인생에게 말하다’ 애독자시라면 뜻을 함께해 주시면 어떠실런지. ㅎㅎㅎ

오래전부터 3000리호 자전거를 구하기 위해 팔방으로 수소문해 왔었어요. 단순히 옛날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라기보다는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전거여행을 프로젝트로 만들어 가난으로 힘든 어린이들과 그 가정을 돕는 일을 해 왔는데, 그러한 이유의 자전거여행 프로젝트라면 왠지 3000리호 자전거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3000리호 자전거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 당시 3000리호 자전거는 지금의 자동차 이상의 역할들을 했지요. 육중한 3000리호 짐자전거는 쌀집자전거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쌀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수많은 짐들을 실어 나르는 아주 효율적인 운송수단이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경기도 용인의 한 고물상에서 오랫동안 보관돼 있던 낡고, 녹슬고, 부서진 3000리호 자전거를 어렵사리 구했다. 

저희 아버지 세대에는 그야말로 집에 3000리호 자전거 한대만 있으면 엄청난 경제적 재원이 되었었지요. 또한 어린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울 때에는 아버지의 커다란 3000리호 자전거를 힘겹게 끌어 속도를 높인 후 프레임 안쪽으로 묘기를 부리듯 발을 넣어 구르다가 자전거에 간신히 올라서 발을 끝까지 다 뻗어도 페달에 닿지 않아 안장엔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엉덩이를 앞으로 빼서 좌우로 씰룩거리며 페달을 힘겹게 굴려 앞으로 나아갔지요.

어릴 적 추억 가득한 3000리호 자전거

40대 후반인 저도 아주 조금만 맛봤던 추억이니, 40대 이하의 젊으신 독자들은 아마 상상이 잘 안 갈 겁니다. 아무튼 정말 그땐 그랬습니다. 게다가 최초의 국산 자전거였던 3000리호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립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서방국의 원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야만 했던 그 시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우리 국민 스스로가 가난을 이겨내는데 정말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는 평가를 어느 정도는 이 3000리호 자전거에게 해 줘야 하지 않나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제가 자전거여행 프로젝트를 통해 돕고 있는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1970년대 상황과 비슷한 실정입니다. 그들에게 자전거는 장사를 할 수 있는 밑천이 될 수도 있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는 수단도 되며,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회복시키고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정말 훌륭한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3000리호 자전거를 타고서 프로젝트 여행을 하면 지금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우리나라도 가난을 이겨내서 선진국대열에 섰다. 너희 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 희망을 가져라. 지금은 우리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결국엔 너희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라는 메시지가 조금이라도 더 진지하고 정직하게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믿음을 갖게 된 것이죠.

지난해 가을 경기도 용인의 한 고물상에서 오랫동안 보관돼 있던 낡고 녹슬고 부서진 3000리호 자전거를 구조해 왔습니다. 심한 녹들을 벗겨내고 보니 프레임도 멀쩡하고 앞뒤바퀴 휠도 상태가 양호했습니다. 2대째 자전거포를 운영하는 단골가게에 녀석을 맡겨서 ‘굴러갈 수 있게’ 수리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얼마 후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자전거포에 가보니 오래전에 단종 되었음에도 옛 부속 창고를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 그 당시 부품들로 3000리호 자전거를 완전 새것처럼, 그 대신 그때 그 당시 원형 그대로 복원을 시켜놨지 뭡니까. 어찌나 감사하던지 말이지요.

앞바퀴 마찰로 도는 발전기가 돌면 예쁜 알전구가 노랗게 빛을 내고, 마찬가지 원리로 앞바퀴가 회전할 때 마찰시키면 요란하게 ‘따르르르릉’하고 울리는 차임벨도, 앞 흙받이 끝에 ‘3000’이라는 엠블럼까지. 정말 몇 십 년 전의 모습 그대로로 복원을 시켜주셨습니다. 자전거포 사장님도 스스로 즐겁게 작업했다고 말씀해 주시며 뿌듯해하셨어요.

어린이들 돕기 위해 전국 달리는 ‘삼천이’

복원된 3000리호 자전거에게 ‘삼천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제가 직접 타고서 멀리 여행도 떠나고 출퇴근도 종종 할 수 있게끔 튜닝을 직접했지요. 멋진 여행용 가방도 달아 주고, 제 이름이 새겨진 스티커도 붙여주고, 체인 커버에 흰 페인트로 Cycling For C. (어린이 Children의 C.)라고 삼천이의 미션 메시지도 진하게 그려 넣어 주었지요.

3000리호 자전거를 타고 한강자전거길 70km를 달렸다. 

삼천이를 타고서 강원도 삼척에서 첫 미션 라이딩을 했습니다. 삼척은 제가 프로젝트를 만들어 후원하고 있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이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2년도에 한국전쟁 고아들을 돕기 위해 첫 번째로 어린이센터를 세웠던 곳이거든요. 그리고 다음 미션은 서울 한강자전거길 70km 라이딩이었습니다.

전쟁기념관, 국립현충원, 외국인선교사묘역, 올림픽공원 그리고 한국컴패션 사옥를 코스에 넣어 한국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컴패션이 70년의 세월동안 전 세계 220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한강의 기적 서울에서 70km를 달린 것이지요. 지난 8일부터 며칠간 삼천이와 함께 제주도에 건너가 일주를 했습니다. 깨끗한 물이 필요한 어린이들 가정에 정수필터 70개를 선물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모든 걸 다른 자전거가 아닌, 고물상 고철에서 다시 길을 달리는 멋진 자전거가 된 3000리호 삼천이와 하고 있다는 게 저는 너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SNS 친구가 그려 준 삼천이. 삼천이를 타고 아이들을 돕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고 있다. 

자전거가 인생에게 말합니다. “넘어지지 말라고 뒤에서 잡아주던 고마운 손길에서 독립하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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