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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누가 내 편인지 알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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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누가 내 편인지 알고 합시다
  • 윤두영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22.02.21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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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면장을 하지’란 말을, 우린 흔히 하고, 또 듣습니다. 얼핏 많은 사람들은 그 면장을 面長으로 이해합니다. 필자도 그렇게 이해해 왔습니다. 아니랍니다. 본 뜻은 免牆이랍니다. ‘알아야 담장을 넘는다’라는 것이죠. 이 표현은 공자가 자기 아들에게 ‘공부하고 익혀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 데서 유래했다 합니다. 한학 기초과정 ‘명심보감’의 가르침이라 합니다.

이 가르침에 빗대 ‘알아야 투표를 하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도 곧 코앞으로 다가오지요. 두 선거 모두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할 아주 중요한 선거임에 틀림없습니다.

우선 대통령 선거를 짚어 보겠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개인을 선택함과 동시에 여당을 결정하는 선거입니다.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 대통령과 함께 자신들 정당의 정책을 국정에 반영하는 정치를 하지요. 반면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의 정책을 감시하며 다음 선거를 준비합니다. 이러한 정당은 동서를 막론하고 크게 보수와 진보로 구분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한마디로 어떤 경제체제를 선택하느냐에 달렸다고 합니다. 경제체제 선택은 곧 국가재정의 조성과 분배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보수당은 정부규제를 줄이고 세금도 적게 거두는 정책을 폅니다. 이러한 정책은 자본가와 기업인에게 유리한 정책입니다. 유리한 만큼 투자와 성장을 견인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장점엔 단점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세금을 덜 거두는 만큼 복지정책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약화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농업인, 소외계층에겐 치명적인 ‘삶의 질 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보정당은 정부규제를 강화해 세금을 많이 거두는 정책을 폅니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한 정책입니다. 하지만 자본가와 기업인 투자가 약화돼 경제성장을 저하시킬 수도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렇듯, 보수와 진보 정책은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해서 두 정당의 선악과 옳고 그름을 단적으로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유권자인 대중은 보수와 진보 중 어느 한 정당에 투표를 해야 합니다. 대중은 민주국가의 주인입니다. 국가주인은 선거를 통해 보수와 진보를 선택할 권한과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免牆의 문제입니다.

대중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정당을 선별할 식견을 가져야 합니다. 그 식견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치 않고, 모든 정치가 썩었다며,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 무관심이 더 나쁜 정치와 정치인을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관심으로 ‘될 대로 되라’ 식의 투표를 하고 투덜댈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예를 든다면, 보수정당에 표를 던져 놓고 서민의 이익을 대변치 않는다 열을 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진보정당에 투표하고 자본가들이 투자를 않는다고 투덜댈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관심 대중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있습니다. 그들의 무관심 그자체가, 무엇이 잘못인지를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알아야 免牆’ 할 수 있게 말입니다. 바로 당신이 그런 사람이길 바랍니다.

H.D. 소로우(1817~1862)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대중이 멀었다 말하는 사람)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대중들이 당신(소수)처럼 선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

거의 200여 년 전에 한 말입니다. 두 세기가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을 두고 우리에게 하는 지적인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합니다. 우리 정치 후진성을 ‘대중 탓’으로 치부치 말라는 지적이기 때문입니다. ‘대중 탓’을 말하는 너 자신만이라도 이 사회의 ‘효모’가 되라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그 효모, 기존 정치인에게 기대하긴 난망입니다. 양심적 지식인이 나서야 합니다. 기존 정치에 냉소만 보내지 말고 말입니다. 그러는 너는? 그러지 못할 이유인 필자의 식견 부족이 마냥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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