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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 홍성의 마을기업에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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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 홍성의 마을기업에 취직했다
  • 홍성신문
  • 승인 2021.01.25 08: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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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당환경농업마을 이지희

사무실에서 근로계약서를 쓴 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놓쳤다. 마을길을 걷고 또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구름은 잔뜩 꼈지, 바람은 미친 듯이 불지, 개들은 자신들의 본분에 충실하게도 낯선 사람을 보고 열심히 짖어댄다. 숙소로 가는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숙소에 도착했다.

2020년 4월 17일, 대학 입학 후 쭉 살고 있는 서울을 떠나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에 도착했다.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청년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홍성의 한 마을기업에 취직을 했기 때문이다.

숙소인 쉐어하우스에는 이미 낯선 사람이 살고 있고, 내 방의 짐은 널브러져 있다. 청소 안 한 방은 지저분했다. 그 방에 언니가 선물해준 매트리스 하나 덜렁 깔고 일찍 잠을 청했다. 잠은 오지 않았다. 분명 긴 거리를 오랜 시간 걸었기 때문에 몸은 힘든데 정신은 말똥 했다. 어둠 속에서 정확히 일 년 전의 오늘을 생각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제주도 세화 해변도로를 걷고 또 걸었다. 2년 간 계약직으로 일했던 방송국에서 계약 만료로 퇴사 한 뒤, 나에게 준 첫 선물인 걷기 여행이었다. 신기하게도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낯선 길을 혼자 걷게 된 것이다.

​구직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채용공고가 또다시 낯선 곳으로 이끌었다. 여행 또한 나의 선택이었고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도 역시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내내 설렜고 다음날이 기대됐다면, 이번에는 막막하고 다음날이 걱정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 회사에 소속되더라도 가능하면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선택했다. 거대한 도시 서울은 가능했다. 적당히 관계 맺고, 적당히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적당히 해내면 되었다. 무료하지만 안정된 시스템 안에서 일했다.

​마을에서의 일은 그동안 했던 일들과는 정반대였다. 앞으로 일하게 될 문당리의 교육관에서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농업 관련 교육이나 세미나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대관하고, 숙박 업무를 겸하는 곳이었다. 단순히 이런 일만 한다면 지원 하지 않았을 것이다.

채용공고에는 마을의 콘텐츠를 기록하고 그 콘텐츠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업무가 제시돼 있었다. 농촌과 전통문화를 활용한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기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해서 홍성까지 왔다. 솔직히 막연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농촌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 믿음에 대한 근거는 얄팍했다.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없었다. 시간은 흘러 한 달이 지났다. 일은 조금씩 적응되면서도 여전히 낯설었다.

​사무실에 잠깐 짬을 내 들르신 정여사 님은 나를 보더니 대뜸 “저 짝으로 출근하는 거 봤는디”라며 말했고, 나는 “저를요?”라고 대답했다. 여사님은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 말씀에 진심으로 기뻤다. 그래서 어디서 보셨냐고 되물었다.

​스스로도 의아하게 생각될 만큼 여사님의 말씀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여사님은 교육관 일로 잠깐 뵙고 인사드린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나를 알아봐주다니! 그걸 이렇게 알려주는 이 상황이 이상하리만치 기뻤다. ​

마을주민 분들의 참깨 파종을 도와드리고 새참을 먹었다. 한 여사님과 어르신이 각각 다른 날의 출근길에 대해 말한다. “아침에 다리 위에서 벚꽃 사진 찍고 있더만.” “요, 교육관 앞에서 인사 했잖여.” 나는 또 기뻐서 냉큼 대답했다. “네, 맞아요!”

퇴근길 버스를 놓칠까 열심히 달리다가 마을 분을 보고 인사했다. 반갑게 “예, 안녕하세요.” 인사해주시는 어르신을 뒤로하고, 첫날 걸었던 마을길을 미친 듯이 달리다가 뛰는 걸 포기한다. 다시 걷는다. ‘에라이~ 버스 놓치면 그냥 걸어서 가자. 이제 길도 다 아는데 뭐!’하는 심정으로. 지름길도, 개들을 피해 갈 수 있는 길도 이제는 안다.

낯선 길을 걷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낯선 길도 걷다 보면 아는 길이 되는 것처럼, 알게 되는 게 많아지면, 나의 불안도 조금씩 사라지겠지.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아직은 낯선 관계들이 쌓이다 보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함 속에서도 내 속도대로, 내가 갈 길을 찾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뛰지 않아도, 부지런히 걷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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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H 2021-02-05 10:37:23
필력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