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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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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냉장고
  • 홍성신문
  • 승인 2020.12.26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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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자치연구소 정만철 소장

조선시대에는 한겨울이 되면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해서 궁궐의 얼음 저장소인 서빙고, 동빙고에 저장했다가 한여름에 사용했다. 당시 선조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베리아 벌판의 매서운 칼바람 같은 냉기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불과 19세기까지 미국은 뉴잉글랜드 지방의 호수에서 잘라낸 얼음을 날씨가 더운 인도나 호주로 수출을 했다면 과연 믿겨지기나 할까.

1862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인쇄공이었던 제임스 해리슨이 세계 최초로 냉장고를 발명한 이후, 사회는 급속하게 변화하게 되었다. 증기선에 냉장고를 탑재해 소고기와 바나나, 생선 등을 신선하게 운송할 수 있었고, 대도시 소비자의 식생활도 크게 달라졌다. 1925년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일반화된 가정용 냉장고를 최초로 판매하면서 인류는 처음으로 음식 보관에 대한 걱정 없이 다양하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오죽하면 일본에서는 냉장고를 흑백TV, 세탁기와 함께 ‘신이 내린 세 가지 물건’이라고까지 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냉장고는 1965년 4월에 금성사(지금의 LG)가 출시한 ‘눈표냉장고’였다. 초등학교 시절, 가정조사라는 명목으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냉장고 있는 집, 텔레비전 있는 집 있나?”라고 묻고, 몇몇 애들이 손을 들면 여기저기서 “와! 와!”하고 탄성을 지를 만큼 냉장고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냉장고의 보급으로 농산물의 제철은 없어졌고, 냉동식품의 발전은 식품의 저장기간을 무한정 늘려 놓았다. 마트에서 원 플러스 원(1+1) 행사를 하면 앞뒤 재지 않고 일단 구입해서 냉장고에 구겨 넣으며 ‘언젠가는 먹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식품 구매 금액에서 차지하는 음식물 쓰레기 발생비중이 30%나 된다는 사실을 보면, 냉장고는 이기적 소비를 부추기는 물건이기도 하다.

얼마 전 충청남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공유경제 워크숍에서 수원시의 ‘공유냉장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원시의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은 하루에 372톤으로, 한 사람이 하루에 0.3kg의 음식물을 버리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먹거리 접근성 문제로 먹거리 사각지대에 있는 인구가 2만3000명이나 된다.

수원시는 먹거리 사각지대 해소와 먹거리 기본권 보장, 호혜적 먹거리 공동체 복원, 먹거리 거버넌스 구축, 음식물 쓰레기 감소 등을 목적으로 2018년부터 마을과 시민이 함께 만드는 공유냉장고를 설치하고 있다. 수원시의 공유냉장고는 경제적 취약계층과 혼자사는 노인가구 및 다문화가구 밀집지역, 그리고 생협, 식당, 카페 등 개방성과 접근성이 좋은 곳에 설치된다.

공유냉장고에는 누구나 나누고 싶은 음식을 가져다 넣을 수 있고, 누구나 편안하게 가져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음식을 가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낙인효과가 없도록 마을 공동체가 편안한 나눔의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유냉장고가 수원 시내에 24개소가 있으며, 최근에는 공유부엌과 공유식당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수원시의 공유냉장고는 인근의 화성시와 이천시로도 전파되어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음식은 차갑지만 진정 ‘따뜻한 냉장고’가 아닐 수 없다.

2018년도에 수립한 ‘홍성군 푸드플랜 실행계획’ 안에도 이러한 공유 먹거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직 없다. 공유냉장고부터라도 시급히 설치해 먹거리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그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힘들었던 2020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나눔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 따뜻한 지역공동체의 활동을 기대하며, 새로운 2021년 한 해를 희망차게 맞이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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