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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신문을 읽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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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신문을 읽어야하는 이유
  • 이번영 기자
  • 승인 2020.12.06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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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영 시민기자

1987년 9월 11일 홍성장날, 원앙예식장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홍성군지부와 홍성군농민회 창립식을 마친 군민 400여 명이 거리 행진에 나섰다. 예산, 청양, 서산 전투경찰을 지원받은 홍성경찰은 2개 중대 400여 명으로 편성해 최루탄을 발사하며 강제 진압, 주정배 농민회장을 비롯해 29명을 연행했다. 홍성장날 1000여 명이 지켜보며 더러는 동참한 이날 시위는 다음날까지 계속돼 “3・1운동 후 홍성지역의 가장 큰 민중봉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음날 어떤 신문과 방송도 그에 대한 기사는 한 줄도 나지 않았다. 한 지방신문은 홍성에서 자동차 판매 대수가 줄었다는 기사만 크게 나온 것을 본 군민들이 언론의 태도에 분노를 터트렸다. 당시 홍성에는 중앙지와 지방지 합해 10여 개 신문기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홍성 출신 한 기자는 시위대와 경찰을 왔다 갔다 하며 열심히 취재했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종로 골목길에 대학생 몇 명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다 경찰에 쫓겨 10여 분 만에 사라져도 신문에 한 줄 나오던 때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준비한 홍성신문은 그 다음 해인 1988년 12월 1일 전국 최초의 지역신문 평가를 받으며 창간됐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가 서울을 중심으로 집중돼 있으며 언론은 신군부 정권의 악명 높은 통폐합으로 1도 1개지 원칙으로 운영되던 때 홍성신문 창간은 가뭄에 단비였다. 홍성신문 창간은 들불처럼 번져나가 5년쯤 지나자 전국 모든 지역에 지역신문이 탄생했다. 침묵의 바다 속에 가라앉아있던 지역민의 입과 귀와 눈이 열린 것이다.

그 후 32년이 지난 현재 언론환경은 크게 바뀌었다. 홍성신문을 읽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어느 신문이든 읽는 사람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언론수용자조사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국민들의 신문 구독률은 6.4%까지 추락했다. 2000년 59.8%, 2010년 29%였으나 해마다 크게 감소하고 있다. 2020년 현재는 더 떨어졌을 것이다.

주간잡지 <시사IN>은 지난 10월 둘째주 창간 13주년을 맞아 언론매체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해 보도했다. 응답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로 ‘유튜브’를 꼽았다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역시 기성 언론을 제치고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을 얻었다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 같은 매체에 관심도 없는데 왜 질문하느냐며 응답을 거부한 사람이 45%나 된다는 것이다.

전통 미디어의 구독률과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신문기자가 ‘기레기’라고 불리며 신문산업이 혐오산업 비슷하게 된지 오래다. 내 주변 60대 이상 노인들도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보고 산다. 신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신문업계의 주요 관심사로 등장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있다.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보고 싶은 소식만 듣고 살면 편향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신문들은 각자 강한 정파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문은 자신들과 맞지 않는 뉴스라고해서 사실보도조차 생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신문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도 접하게 된다. 그건 우리가 사는데 필요하다. 신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신문 기자들은 오랫동안 경험으로 쌓아온 노하우와 정보망을 동원해서 발로 뛰어다니며 기사를 쓴다. 그렇게 쓴 기사는 회사 내 더 전문가로부터 채택 받아야 하며 몇 단계 검증을 거쳐 한 편의 기사를 내놓는다. 개인이 쉽게 만드는 유튜브나 SNS가 대체할 수 없는 신문의 무게다.

신문은 1면 톱기사가 가장 중요하다.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며 1면 머리에 올라온 기사 제목, 또는 사진 한 장을 보는 순간 놀라거나 감격하는 경우가 많다. 1면 머리기사는 그 신문이 지향하는 방향과 의도, 차별성, 사상과 철학을 보여준다. 각 지면마다 기사 등급, 글자 크기와 모양, 사진과 조화로운 배치 등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이는 신문 외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없다. 여러 가지 반찬으로 가득한 밥상을 받아 보는 그 자체가 예술이며 입맛을 돋군다. 유튜브나 포털 뉴스는 미리 먹고 싶은 것을 정해 골라야하는데 신문은 입맛 돋구는 것들을 한 상 차려놓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요즘 누가 신문을 보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모 일간지 시민편집위원으로 참여해 1년 동안 여러 신문을 꼼곰히 일은 한 시민은 “구닥다리 종이 신문에서 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의 지식과 깊은 사색, 철학이 샘솟는 칼럼 한 편만 읽어도 그날 신문 값이 아깝지 않다.

풀무생협 모 전무는 “종이신문을 읽지 않지만 홍성신문은 빠짐없이 챙겨 읽는다. 우리 지역소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종이신문 사향시대라지만 우리지역 소식과 주민 여론을 반영하는 매체는 지역신문 만 가능하다.

신문을 계속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은 다르다. 보통 때는 잘 모르지만 어떤 사안이 닥쳐 정치, 사회적 판단에 직면할 때는 생각의 수준이 다르다. 신문 보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 생각, 삶의 질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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