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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②민주평통자문위원 아카데미 강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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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②민주평통자문위원 아카데미 강좌 개최
  • 이번영 기자
  • 승인 2020.11.07 0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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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은 한국형 통일모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4항은 경제협력 사업이다. 두 달 후 우리는 경제협력 사업을 하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북측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우선이라며 반대했다. 평화협정만 되면 그런 것들은 다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협력을 통해 신뢰구축을 확실히 하고 그 힘으로 종전과 평화협정으로 가야 가능하다는 점을 설득해 동의를 받았다. 그 결과물이 개성공단이다.

6만 병력 15km 물러나 공단 내줘

개성공단은 2000년 8월에 합의, 2003년 착공, 2004년에 첫 제품이 나왔다. 당시 나는 청와대에서 개성공단 건설 협상 컨트롤타워 진두지휘팀에 참여했는데 불편한 진실이 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평안북도 정주에 공단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북측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제품을 만들어 중국에 판매하기 좋은 지역으로 생각한 것이다.

김정일이 거부했다. 그러자 정 회장은 해주를 요구했다. 해주항을 통해 물건을 중국에 팔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생각이 달랐다. 자기들은 공단을 그냥 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울과 가장 가까운 곳에 공단을 만들어 남쪽 기업이 많이 들어와 초기 수익을 창출해야 제2, 제3의 공단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개성을 내주겠다고 했다.

김정일은 2000만평 공단을 만들면 남측 기업이 몇 개 들어올 수 있나 물었다. 우리는 최대 5000개 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협력업체가 몇 개 정도 되나 물었다. 중소기업청 통계로 볼 때 10만개 정도 협력업체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일이 고민하다 최대한 특혜를 줄 테니 최단 시일 내 5000개 기업이 들어올 수 있게 건설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2000만평 공단 건설에 대한 문서에 합의했다. 4000 평까지 내주겠다고 구두약속을 했다. 우선 100만평 공단을 개발했다. 그러나 합의사항의 2%도 실현이 안 된 맹아기에 문을 닫은 것이다.

개성공단은 서울 광화문에서 65km, 맑은 날 삼각산 위에서 개성 송악산이 보이고 개성에서 서울 삼각산 봉우리가 보인다. 개성은 2군단 기갑 6사단과 포병연대 6만명의 병력과 무기를 갖춘 북측 서부 최전선이다. 이 병력과 무기를 15km 정도 빼내서 송악산 뒤로 물리고 공장지대로 내준 것이다.

토지 평당 900원, 월급 6만3000원

북측이 개성공단에 준 특혜는 토지와 임금이다. 당시 남쪽에서는 개성공단에 들어갈 기업들에게 3대1 경쟁으로 분양을 마쳤다. 공장 부지가 평당 14만9000원, 상업용 부지 45만원, 호텔 140만원 등 이었다. 우리는 북측에 토지대금을 얼마나 줄 것인가 물었다. 6‧15정신에 의한 사업인데 무슨 돈이냐며 그냥 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업들에게 돈을 받고 분양을 마쳤기 때문에 상징으로라도 돈을 줘야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1㎡당 1달러만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현금이 아닌 현물로. 그래서 공단 내 북측 건물을 짓는 시멘트를 줬다. 계산해보니 평당 900원씩 준 것이다.

우리는 남측 사장님들을 모아놓고 임금을 위한 의견을 수렴했다. 한 달 월급을 얼마 주면 최소한 중국과 경쟁력 있겠나 물었다. 의료, 봉제 파트 사장님들은 우리 돈으로 월 10만원, 전기, 전자 쪽 사장님들은 15만원을 제안했다. 200불 안쪽이면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협상장에 들어갔다. 100불을 제안했다. 그러자 북측은 또 6‧15선언에 의해 평화의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인데 50불이면 된다고 했다. 고맙다며 즉시 합의서에 서명했다. 연장근무 등 특근을 합해서 2004년 12월 말 결산해보니 실질 임금 총액 6만3000원을 한 달 월급으로 줬다.

우리 기업들이 돈을 벌었다. 개성에서 돈 못 벌면 기업이 아니라는 게 사장님들 말이었다. 베트남에 나간 것 보다 다섯 배 더 벌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2015년 베트남에 199억원 투자, 현지인 5000명을 고용해 709억원 매출, 1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그때 개성공단에는 78억원을 투자, 현지인 2876명을 고용해 954억원 매출, 65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개성공단을 통한 국내 고용창출은 99명이었으나 베트남 때문에 국내 고용창출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남북 남여 사랑 강제 이별

북측 노동자 5만5000명과 14년간 한 덩어리로 일했다. 하루 수천 대 남측 자가용 차량이 드나들며 출퇴근했다. 체육대회, 문화행사 등 각종 행사를 하며 사실상 통일이었다. 남북 남녀가 눈이 맞아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양측 관리자들이 강제로 이별시켰다. 만나면 서로 사랑할 만큼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독일 통일의 주역 에곤 바르(Egon Bahr)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나도 독일통일방안을 설계, 입안했지만 개성공단 같은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참으로 대단하다. 한국의 통일정책은 다른 것 필요 없다. 개성공단을 따라가라.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따라가다 보면 평화가 정착되고 경제통일도 올 것이다. 그 이후 궁극적 통일이 있다. 한국형 통일모델은 개성공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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