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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주호창(홍동면 운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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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주호창(홍동면 운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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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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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가 타는 낡은 스케이트
옛 말에 '대한이 소한한테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말을 실감케 하듯 소한의 매서운 추위가 전국을 강타하였다. 여러 곳에 엄청난 동파의 피해를 입혔는가 하면 물 속에 잠긴 송사리와 피라미도 자는 지 얼어죽었는 지 보이지 않는다.

이 때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외할아버지의 낡은 스케이트! 적어도 10년 이상 넘게 타다보니 스케이트 날은 무디어지고 새 것으로 사려해도 요즈음은 스케이트 타는 이들이 별로 없어 주문을 해야 한다. 겨울철에 스케이트만큼 운동량이 많고 신나는 것도 없을 것이며 잔등이 후끈하고 신선한 호흡은 건강과 노래 부르기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된다.

해마다 나를 위해서 얼어 주는 것 같은 앞 냇가 빙판 길에 나 홀로 외로이 달리기가 자못 아쉽기만 하다. 지난해에 두 딸이 10일 간격으로 아들을 낳아 외할아버지 계급장을 달아준 나이에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놀랍기도 한가 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던데……' 젊은 시절 달리기를 한 덕분인지 지금도 젊은이 못지 않게 달리고 싶다.

어린 시절, 온 동네 꼬마들과 함께 어울려 썰매 타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아버지께서 철사와 나무 판자를 잘라 만들어 준 앉은뱅이 썰매. 어른들은 길 꼬챙이를 짚고 달리다 넘어지며 외발로 스케이트 타는 이들의 멋진 모습! 갑자기 '쨍'하고 천둥치듯 길게 줄을 그으며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살얼음판을 겁없이 지치다 물에 빠져 양말과 솜바지가 젖어 자꾸 내려가던 일, 그대로 집에 가면 야단맞을까봐 냇둑에 불을 놓고 말린 것이 더 더러워지고 불에 그을려 걱정하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뿐인가. 팽이나 연 살을 깎다가 손을 다쳐 피가 나고 코 흘리며 딱지치기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던 때가 그리워진다.

톨스토이의 '빛이 있을 동안에 빛 가운데 행하라'는 말처럼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고 이 얼음이 녹기 전에 마음껏 얼음을 지치자. 요즈음 아이들은 방학이 되어도 여기 저기 학원다니느라 바쁘고 컴퓨터 앞에 매달리다가 겨울철 운동도 잊고 어린 시절의 추억도 놓쳐보린 그들이 애처롭다. 이 얼음이 녹기 전에 어서 나와 얼음판에 함께 뒹굴고 추위를 이겨보자. 지식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체험으로 얻는 지혜가 더 값질 것이다.

내년 겨울에는 외손자와 앉은뱅이 썰매를 탈 수 있겠지!
<독자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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