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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남덕유산 - 박종민(서부농협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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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남덕유산 - 박종민(서부농협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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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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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통해 생활철학과 삶의 방향 가늠
국립공원 덕유산 향적봉(1614m)과 남덕유산(1507m)이 주봉을 이루면서 서북부에 적상산(1034m)과 복으로 거칠봉(1178m)이 동부에 지봉(1248m)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전북 무주군 진안군 그리고 경남 함양군 거창군 등 4개 군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잘 어우러져 있는 거대한 명산중의 명산이다.

우리 일행이 홍성을 오전 6시10분에 출발, 논산을 거치고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금산 인삼휴게소에서 잠시 머무른 뒤 남덕유산 자락인 60령 휴게소에 든 시각은 9시20분경, 일행은 등산 준비를 하여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여러 등산로 중에 경남 함양군 서상면에서 전북 장수군 강계면으로 너믄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인 60령 휴게소 맞은쪽에서부터 입산을 시작하였다.

예년 같았으면 지금 한창 추위와 눈보라로 동장군의 기승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즈음이건만 오늘만큼은 겨울 안개가 산 저 멀리에서부터 산 가까이 산자락을 휘감고 돌고 있는 계곡과 산골짜기를 따라 꿈틀대며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봄 날씨와도 같은 쾌적한 기온 속에서 아침 하늘을 가리운 잔뜩 찌푸린 날씨와 걸맞게 뭉틀대는 구름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오전 9시30분에 시작된 등산길은 한 시간 넘도록 그저 밋밋한 야산길이었고 마른 솔잎이 양탄자처럼 곱게 깔려 있는, 가끔은 솔바람이 앙가슴을 스치는 평탄한 길이이어지고 있었으며 능선 길을 따라 더 오르니 잎이 다 떠어진 앙상한 갈나무와 잡목이 숲을 이룬 오솔길로 굵은 가랑잎이 수북수북 쌓여 있어 낙엽을 밟고 걷는 촉감이 부드럽고 발길을 옮길 때마다 낙엽 밟는 소리가 행진곡의 리듬이 되어 마른 나무숲으로 울려 퍼져가는 산책로와 같은 숲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낙엽을 밟아가면서 유명한 명시 한 구절을 읊조렸다.

"시몬, 나무 잎 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덧없이 버림을 받고 땅위에 떨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구르몽의 시구절을 되뇌이면서 마른 가랑잎이 낙엽져 쌓인 등산길을 걸으며 발길 옮길 때마다 쏘르락 스르락 뿌지직 뽀지직 내 귓전을 간질이는 발자국 소리에 아직은 가을이 지난 지 오래지 않은 애틋한 정감과 등산이 아닌 산책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기도 하였다.

2시간 여 오른, 해발 1200m 산 능선에 도달하니 도토리나무 가지에 드문드문 달린 옥구슬 같은 상고대(樹稼·霧淞)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1400m 지점에 오르니 눈꽃과 어름 꽃이 만개하여 가슴 짜릿한 서정적인 감정이 일면서 신비롭고 멋들어진 자연경관에 나도 모르게 취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주변을 살펴보니 시상(詩想)이 떠오르고 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설중매(雪中梅) 피듯 피어난 상고대
차가운 하늘을 이고 돋아난 상고대.
겨울 안개구름 속에 묻힌 남덕유산 자락에
빛 찬란한 송이송이 아름다운 눈꽃이 피었네.
눈 어름 꽃이 피어난 나뭇가지 끝을
너풀너풀 춤을 추며 흐르는 운무(雲霧).
신비한 대 자연 속에 한데 어울려 춤을 추는
바람 구름 나무 바위 하얗게 핀 눈 어름 꽃.
산정에 핀 겨울 꽃은 아름드리 내 사랑이 되고
눈꽃 깨끗한 자태 가슴 벅찬 내 감동이네.
싸리나무 가느다란 가지가지 끝에 열린 눈꽃
철쭉나무 야릿야릿한 허리에 돋아난 상고대.

진달래와 철쭉나무에 피어난 눈 어름 꽃은 더욱 아름다웠고 어쩌면 이리도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진달래꽃은 봄에 피어나건만 철쭉꽃은 초여름에 피어나건만 찬 하늘을 이고 새하얀 진달래 철쭉 눈꽃이 곱게도 피어났기 말이다.

맑고 깨끗한 새 하얀 눈꽃이 피었네.
봄에 피는 진달래꽃은 분홍색깔이요
초여름 피어난 철쭉꽃은 진분홍색깔인데
시방 남덕유산에 피어난 심금을 울리는
진달래 철쭉꽃은 차고 깨끗한 새하얀 눈꽃이네.
오! 남덕유산의 찬란하고 멋들어진 황홀함이여!
숨죽이며 바라다보다가 탄성을 질러 봐도
속이 다 차지 않고 직성이 풀리지 않을
침이 마르도록 예찬을 해도 표현이 모자랄
남덕유산자락 풀 나뭇가지위에 핀 눈 어름 꽃.
눈꽃가루 머금은 고목(枯木)과 겨울 나목(裸木)은
히긋히긋 얼굴에 분칠을 한 옛 시골 색시
오염됨이 없고 순수하면서도 수줍은듯 하여
부둥켜 끌어안고 싶은 헐벗은 나무와 해묵은 고목.

세상사 모든 것이 산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거치른 고개도 있고 돌부리와 계곡을 지나며 로프를 타고 곡예를 하며 낙하도 하고 바위등을 기어 넘는 어려움이 있어 가슴 메어오는 심장의 박동과 팔 다리 저려오는 전율도 있겠지만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며 벼랑에서도 버티고 견뎌내는 용기와 지기가 있다면 삶은 그저 행복하기만 한 것을 아는 사람 그 얼마나 될까?

구상나무 푸른 잎 속속들이 하얀 꽃이 피고 다래넝쿨 가느다란 줄기에 어여쁘게 돋아난 어름 꽃을 보며 깊은 바다 속 하얀 산호초와도 같고 동화 속에나 나타나는 산신령의 흰 턱수염과도 같은 오묘하고 현란한 산정(山頂)의 꽃 세계와 풍치에 취해 가슴 뭉클하게 요동치는 율동과 심호흡을 가다듬고 잔잔한 마음 속의 동요에 내 작은 행복과 마음 뿌듯함으로 찾아온 나의 발길이 흡족해지는 자신감을 새삼 느끼고 발견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이 산행을 통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보람과 희망과 또한 건강을 누리며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 무엇인가라도 나눠줄 수 있는 생활 철학과 삶의 방향을 잡고 가늠해 본다.

산행은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산은 우리에게 영원한 진리를 안겨 준다.
산은 우리에게 너그러움과 사랑을 준다.
산은 그 누구에게나 가슴을 여는 지기(志氣)를 길러주고
산은 그 누구에게라도 등한히 하지 않는 미더움을 주고
산은 그 누구로 하여금 성나게 하거나 불평을 주게하지 않으며
산은 산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편안한 미소와 정을 담아주며
산은 산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를 과신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의리와 친근함을 준다.

이런 저런 생각과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눈이 바닥에 얼어붙은 위험한 바위 길을 로프를 잡고 당기면서 새로 잘 정비해 놓은 철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마침내 남덕유산(1507m) 산정에 오르니 하늘과 대지를 함께 감싸안은 운해(雲海)가 비행기에서 하늘을 내다보는 것처럼 느릿느릿 꿈틀거리며 흐트러졌다 모이고 모였다가 흐트러지면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관을 가슴과 마음속에 담아 가다 못해 아쉬워하는 등산객들과 서로 앞다퉈 남덕유산 정상의 표석을 잡고 사진촬영을 하느라 바위 너덜로 이뤄진 좁은 산정이 복잡했다. 우리들은 산을 정복한 홀가분한 기분으로 한동안 주변 경관을 살펴보면서 기념촬영을 하였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하였다.

산 정상에서 남쪽 방향의 영각사로 내려오는 2시간여 하산 길은 4~500여m 지점까지 내려오는데 돌부리와 미끄러운 잿빛 흙바닥 길로 지루하면서도 힘이 많이 들었다. 키 작은 조릿대가 밭을 이룬 가운데 큰 키 박달나무랑 물푸레나무 등 잡목이 울창한 골짜기를 지날 무렵부터 산그늘에 날이 저물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겨울 하루해는 짧았다.

오후 17시경 선두 그룹이 주차장에 당도하였으나 후미 일행 중에 뒤떨어진 회원이 잇는 모양이었다. 깊은 산골짜기에 어둠이 깔리고 산은 조용하고 삭막해 가는데 늦게 내려오는 회원을 배려해 내려오는 후미 그룹을 일행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다. 다같이 초조하게 기다리며 걱정을 하는 속에 마침내 18시40분경 일행 모두가 하산하게 버스에 올랐다.

언제 어디서나 의리 있고 선하며 용기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우리 산행인들의 기도와 기원으로 오늘 하루의 산행도 좋은 마무리를 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1월 17일 163차 한라산 눈꽃 산행을 고대하면서 귀가 길에 올랐다.
<독자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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