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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바라보며 간절함을 비는 지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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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바라보며 간절함을 비는 지아비
  • 홍성신문
  • 승인 2020.06.2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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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면 송암리 구암마을 - 사람 사는 이야기 ②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다. 인간이 심고, 거둬들인 작물만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풍성함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상수리다. 도토리는 작고 길쭉한 타원형으로 생긴 반면 상수리는 참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로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묵을 했을 때 도토리묵은 찰지고 맛이 좋은 반면 살짝 떫은 맛이 나고, 상수리묵은 상수리 특유의 향이 나며 떫은 맛이 덜하다.
상수리묵은 상수리를 말린 다음 물에 담가 떫은 맛을 우려낸다. 4, 5일 정도 우려낸 열매를 곱게 간다. 예전에는 절구통에 잘게 부순 후 고운체로 쳤는데 요즈음은 방앗간에 가서 갈아온다. 가루를 솥에 넣고 잘 저어주며 끓이면서 소금을 한 숟갈 정도 넣는다. 저으면서 물을 조금씩 넣어준다. 이 때 몽우리 지어진 것이 풀어질 때까지 잘 저어준다. 적당한 농도가 되면 판에 굳혀 식힌다. 마늘, 쪽파, 참기름, 깨소금 등을 넣은 간장양념과 함께 하면 보들보들한 묵의 식감과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구래에 사는 박흥순 씨는 주변에서 구한 상수리로 묵을 만들어 홍성전통시장에서 판매한다.
“방앗간 가서 갈아오면 한 말에 만 원이야. 난 아들이 기계를 줘서 직접 갈으니까 묵을 싸게 팔어. 온전히 상수리만 넣지. 뭐 다른 거 섞을 줄도 모르고.”

상수리묵을 쑤고 있는 박홍순 씨(사진 왼쪽).

마당 한 옆에 가스 불을 켜고 두세 시간을 은근한 불에 잘저어주며 끓여줘야 묵이 늘지 않는다. 장날이 되기 전날 묵을 만들어 식힌다. 사륜 오토바이에 상수리묵 세 판을 싣고 흥성에 간다. 박 씨의 상수리묵은 오고가는 손님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오매, 뭔 묵이 이렇게 크다?”
“나도 옛날에 묵 많이 쒔는데, 이거 하는 게 얼매나 어렵다구. 지금은 안 혀.”
박 씨가 좌판을 펼치고 앉으니 오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말을 걸고 간다. 큼직하게 한 모씩 잘라낸 상수리묵은 5000원이다. 다른 도토리묵의 두 배 크기다. “쓰는 게 버는거야” 라며 남다른 묵 크기에 미소를 짓는 박 씨다. 가을 햇살을 받고 앉아 있으니 오가는 사람들도 풍경이 된다. 젊은 부부가 팔짱을 끼고 장을 본다.

“난 저러구 살아보지를 못했어. 그때는 팔짱 한 번 끼는 것이 얼매나 쑥스럽고 어렵던지. 지금은 소용 읎지.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턱에 닿았어.”

그 사이 단골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묵 세 개를 예약한다. 다른 상인보다 늦게 나오지만 박 씨의 상수리묵은 몇 시간 안에 완판이다. 추억으로 맛보고, 건강함으로 한 번 더 먹는 상수리묵이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유기농업

유기농업은 일체의 화학비료나 제초제, 가축사료 첨가제 등을 사용하지 않거나 줄이고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는 1930년대에 시작됐고, 우리나라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그 시작에는 한살림농산, 한살림 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 정농회 등의 민간 단체들이 있다. 정농회 초창기 멤버이면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2회 졸업생 이환종, 주예로 씨 부부는 현재 소래울에서 유기농업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은 지는 6년 정도 되었다. 올해는 들깨와 참깨를 10가마 정도 수확했다.”

마늘을 심고 있는 이환종, 주예로 씨.

이환종 씨는 1946년생으로 구암마을 토박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친이 작고하면서 어려워진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진학이 불투명해졌다.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이 씨는 예산농업학교에 합격하면서 진로를 고민했다. 마을에 사는 고(故) 권태오 씨의 권유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입학했다.

“졸업을 하고 1978년에 서울에 상경해 정농회 활동을 했다. 정농회는 1976년에 시작됐다. 정농회 초창기에 요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전국적으로 통일벼가 보급됐는데,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모토아래 시작된 정농회의 이념이 정부의 농업 정책과는 대립됐던 것이다. 서울에서 이러한 정농회를 알리고 친환경농업에대한 안내와 식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후원회장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연락을 받고 이 씨는 홍성으로 돌아왔다. 홍동면에 사업체를 설립해 수익의 일부를 후원하자는 계획이었다.

“2001년에 ‘풀무사람들’을 설립하고, 이후 농업법인회사인 ‘다살림’으로 변경했다. 현재는 유기농 쌀을 이용한 스낵과 빵류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 이 씨가 구암마을에 돌아온 것은 평소 부모처럼 모시고 있던 큰 형님인 고(故) 이환승 씨와 형수인 고(故) 이종매 씨가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형님 내외를 부모처럼 모시고 살았다. 부모 같은 형님이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을 이곳저곳 농지를 구해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이 씨의 부인 주예로 씨는 이환종 씨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후배다. 책을 좋아하는 이환종 씨에게 책을 빌려가며 사랑이 싹텄고 결혼에 이르게 됐다. 문인화를 전공한 주 씨는 “마을에 다시 돌아오니 너무 좋다. 마을에서 오래 살아가야 할 것 같다”며 “마을 어르신들과 그림 수업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 씨는 “제초제나 농약을 하지 않고도 제때 김을 메주면 유기농업도 그리 어렵지 않다. 농사를 지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는 일도 신기하며,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몇 배의 수확을 얻는다는 기쁨이 있다. 주변과 함께 나눠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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