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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박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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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박말 이야기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04.02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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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의 전형 ‘권선징악’ 교훈 품어
▲ 잘려나간 산줄기(지금은 산줄기가 잘려진 곳으로 길이 만들어졌다.)

우리고장 곳곳에 전해오는 옛이야기들 중에는 풍수지리와 관련된 내용이 참으로 많다. 우리조상들이 그만큼 풍수지리를 신봉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고장 갈산에 있는 삼준산에 풍수지리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갈산면 신안리 안악마을 통새골과 신촌마을 쇠맹이골 사이에는 계란처럼 동그랗고 예쁜 동산 하나가 있다. 삼준산 명덕봉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마을까지 내려와서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다. 이 작은 동산 이름이 ‘박말’이다.

이곳 박말 동산에 순종임금의 태실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왕실에 왕손이 태어나면 나라의 국운과 관련된다고 하여 아기의 태를 소중하게 관리했다. 왕실의 태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은 ‘관상감’이라는 곳이었다.

관상감에서는 순종임금의 태실을 조성하기 위해 명당자리를 수소문했다. 유명한 지관을 동원하여 찾아낸 후보지 중에는 이곳 박말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박말은 지역의 세력 있는 집안 소유였으며 이미 조상 산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박말에 순종의 태가 봉안되면 조상 산소는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 정보를 미리 입수한 문중에서는 발 빠르게 대책을 논의했다.

정보를 입수한 집안에서는 박말 양지바른 이곳저곳에 허묘를 잔뜩 만들었다. 동산 곳곳에 모셔진 조상의 산소를 쉽게 옮길 수 없다는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조정까지 문중의 세력이 뻗어있는 집안이었으므로 여러 경로를 통해서 강력한 반대의견이 전해졌다.

결국 발 빠르게 대응한 세력가 집안의 노력으로 순종의 태실은 바로 이웃한 구항면 태봉리에 있는 태봉산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박말의 태실 이야기는 세월이 흐르면서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해 봄 한식날이었다. 한식날에는 문중마다 조상의 산소를 손질하고 보수하는 풍습이 있다. 박말에서도 문중 후손들이 조상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낸 후에 차려온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다.

때마침 삼준산 암자에 기거하는 스님이 탁발을 나왔다가 이 모습을 목격했다. 스님은 배가 몹시 고프던 참이었으므로 반가웠다.

“나무관세음보살 ….”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밥 한 끼 얻어먹기를 청했다. 그런데 문중 후손들의 인심이 참으로 야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스님을 놀리고 비웃으며 밥은커녕 찬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스님은 한참동안 서 있다가 무안만 당하고 발길을 돌렸다. 발길을 돌리면서 혼잣말로 중얼중얼했다.

“천하의 명당자리를 후손들이 미련해서 들어오는 복도 막고 있구나!”

스님은 문중 후손들이 듣도록 일부러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문중후손들은 스님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또렷하게 들었다. 모두가 귀에 솔깃하여 표정이 바뀌었다.
“저어, 스님….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문중후손 한사람이 부리나케 달려와서 스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 산세를 보니 천하에 명당자리요. 후손들이 미련하여 명당관리를 잘못하기에 답답해서 해본 소리라오.”

“하이고 그런가요? 스님 조금 전에는 저희들이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고 잠깐 앉으시지요.”

문중후손들은 부랴부랴 스님을 불러앉히고 푸짐한 음식을 차려내었다. 조금 전까지 희롱하고 야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스님은 시치미를 뚝 떼고 차려온 음식을 모두 먹었다. 그리고는 문중후손들에게 박말의 지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계란처럼 동글동글한 산세가 아주 명당자리라오. 그런데 계란은 어떤 곳에 매이면 불편하여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오. 이곳 박말은 삼준산 명덕봉 줄기 끝에 매달려서 꼼짝달싹 못하는 자리라오. 명덕봉 줄기와 박말을 이어주는 맥을 끊어내야 자유로워지는 형국이 될 것이오.”

“오호, 그런가요? 그럼 어디를 끊어내야 하는 건가요?”

문중후손들은 스님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귀를 기울였다.

“저어기, 저 아래 박말로 들어오는 줄기를 끊어내시오. 그러면 이곳 지세가 계란처럼 자유로워지면서 명당으로 효력을 발생할 것이오.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은 밥을 잘 얻어먹고 목탁을 두드리며 산 아래로 유유히 사라졌다.

문중후손들은 그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일꾼들을 동원하여 명덕봉에서 박말로 내려오는 줄기를 끊어내었다.

그 뒤로 박말은 명당자리의 효력을 발휘했을까?

스님은 문중후손들의 야박한 행동에 속이 상하여 거꾸로 가르쳐준 것이었다. 박말은 삼준산 명덕봉 줄기와 이어지면서 명당의 효력을 유지한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젖줄기와 같은 맥을 잘라내었으므로, 삼준산 명덕봉의 효력이 더 이상 박말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후 문중후손들은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번성했던 문중의 부와 명예는 뜬구름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잘려나간 산줄기가 양쪽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 되었다.

박말 이야기는 인심이 야박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자의 말로를 암시하는 전설이다. 우리 옛이야기의 전형적인 권선징악을 설명하는 설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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