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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금마·홍동면 ‘홍양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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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금마·홍동면 ‘홍양저수지’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7.12.26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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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수탈정책이 만들어낸 빼뽀저수지
▲ 빼뽀저수지의 겨울 모습.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살고 있는 터전들은 각각 고유한 지명이 전해온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곳마다 전해오는 지명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지명 속에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역사와 희노애락의 발자취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고장 홍성군 금마면 장성리와 홍동면 신기리에 걸쳐있는 홍양저수지가 있다. 홍양저수지는 일제강점기인 1945년에 축조가 시작되어 해방 후에 완공되었으며, 현재까지 저수지 주변 금마들녘에 농업용수를 공급해주고 있다.

  홍양저수지라는 지명은 공식적인 명칭이고, 다른 이름으로는 ‘빼뽀저수지’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홍양저수지라는 이름보다는 빼뽀저수지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한다.

‘빼뽀’라는 저수지 이름이 참으로 특이하다. 많은 사람들이 빼뽀라는 이름에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옛날에 빼뽀저수지가 축조되기 전에는 저수지 자리에 넓은 냇물이 길게 흘러내렸다고 한다. 냇물이 흐르는 주변 마을들은 해마다 냇물을 가두었다가 농사철에 맞춰서 물을 빼내어 사용하곤 했다.

저수지가 있는 주변 마을 이름이 와야 마을이다. 냇물이 마을을 휘감아 뱅뱅 돌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와야 마을에 최고 부자였던 김씨네는 해마다 냇물을 가두었다가 농사철에 물을 빼내어 사용했다. 냇물 곳곳에 보를 막아서 몇 달 동안 가두었다가 한꺼번에 물을 빼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김씨네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 머슴들에게 “보의 물을 빼라”고 한 말이, 빼뽀 저수지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빼뽀저수지 이름의 유래는 “보의 물을 빼내어 농업용수로 사용했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것이 기록과 구전으로 전해온다. 보에서 물을 뺀다는 뜻으로, ‘빼보’라고 부르던 발음이 ‘빼뽀’가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유래담이다. 또다른 유래로는 빼뽀저수지가 흘러가는 저수지 아래들판이 ‘뺏들’이라고 한다. 뺏들에 물을 대는 저수지라고 하여 붙여졌다는 유래담도 함께 전해온다.

▲ 빼뽀저수지 둘레길 데크 시설.

빼뽀저수지의 축조는 일제강점기 일제의 수탈정책에 따른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일제는 우리나라 곳곳을 파헤치며 금맥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어 전국 곳곳에 금광을 파놓았다. 특히 금마천과 그 주변은 옛날부터 금맥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온다. 빼뽀 저수지가 있던 냇물 주변에도 금맥이 발견되어 곳곳마다 금광을 파면서 땅이 점점 꺼져 내리고 그 주변 일대는 저절로 저수지처럼 변했다.

일제는 땅이 꺼져 내린 주변 일대에 저수지 축조를 시작했다. 저수지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어 해방 후에 완공되었다. 저수지 축조와 관련하여 “착공은 왜놈이 하고 준공은 우리가 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부터 보의 물을 빼내어 농업용수로 사용하던 냇물과 빼뽀는 저수지 준공과 함께 물속으로 수몰되었다. 옛 빼뽀 자리에 저수지가 만들어졌다는 뜻으로 빼뽀 저수지라는 이름만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지금 현재 빼뽀저수지는 금마들녘 주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낚시터와 조용한 휴식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시사철 강태공들이 몰려드는 것은 물론이고, 저수지 주변에 둘레길과 구름다리 등을 설치하여 조용한 휴식공간으로 각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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