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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대원군이 세운 보덕사(報德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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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대원군이 세운 보덕사(報德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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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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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불태운 죄책감에 창건

예산·홍성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충남도청 이전, 내포신도시 조성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변화와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있는 내포신도시와 예산·홍성 옛 터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 보고자 한다. 충남도청과 내포신도시의 역사적 출발점에 의미를 더하고 나아가 내포신도시 입주민들이 새 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헌 구항초 교장이 격주로 얘기를 펼쳐 나간다.
<편집자 주>

▲ 보덕사 모습(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소재).
흥선대원군은 풍수지리를 무척 신봉했다고 한다. 종실부흥의 꿈을 안고 아버지 남연군 산소를 가야산 자락의 ‘2대 천자지지’에 이장하였다. 흥선대원군은 명당터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천년고찰 가야사를 불태우고 그 자리에 남연군 산소를 이장했다고 전해온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남연군 산소를 가야사 자리에 이장한 후에 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조선 26대 고종임금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앉았지만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남연군 산소를 이장하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던 죄책감이 항상 마음을 짓눌렀다.

흥선대원군은 마음의 죄를 씻으며 정신적인 위안거리가 필요했다. 폐사된 가야사의 동쪽 산 중턱에 새로운 절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절을 짓는데 모든 노력을 다했다. 궁궐을 짓는데 동원되는 유명한 기술자들을 모두 투입하였다. 사찰 건립의 책임자 격인 도편수는 물론이고 기술자들을 모두 궁중에서 직접 뽑아서 내려 보냈다.
새로운 절은 2년 만에 완공되었다. 사찰에 필요한 불상과 범종은 물론이고 궁중화원이 그린 불화(佛畵)도 내려 보냈다. 이외에도 많은 전답과 금전을 공양하였고, 궁중에서 사용하는 각종 가구와 기물 등 일체를 내려 보냈다.

준공행사에는 장남 재면의 이름으로 부처님께 사찰을 바친다는 예를 표시하였다. 절 이름은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보덕사(報德寺)’로 하였다.

부처님은 과연 가야사를 불태운 흥선대원군의 죄를 면해준 것일까?

흥선대원군은 권불십년이라는 옛말처럼, 겨우 십년세도를 누리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며느리인 민비세력과 세력다툼을 벌이다가 밀려나는 수모를 겪으며 불우한 말년을 보내야만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지사가 예언한대로 풍수지리의 효력인지는 모르겠다. 2대 천자지지의 명당터를 추천해주면서, ‘2대를 지나지 못하리라’는 지사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아들이 조선 제26대 고종임금에 올랐고, 고종의 둘째 아들이 조선조 마지막 27대 순종임금에 올랐다. 하지만 2대에 걸쳐 배출된 임금의 자리는 말로가 비참했다. 500여년을 이어온 찬란하던 조선 역사도 함께 마지막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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