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혼 42주년을 맞은 이들 부부는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나 3년 열애 끝에 지난 1965년 9월 결혼했다.
“그때만 해도 부부간에 평등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남편 뒷바라지하고 시집살이 하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장 씨는 맏며느리로써 할 일이 참 많았다고 했다. 시누이 셋과 시동생 둘, 시어머니에 시할머니까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그렇게 가족만을 위해 희생해온 장 씨는 마흔여덟 되던 해 남편의 지원으로 대학원 여성학과에 진학해 공부를 시작했다. 상담에도 관심이 많았던 장 씨는 꾸준한 공부로 지난 1994년부터 7년간 대구에서 한국여성의 전화 성폭력상담소장까지 지냈다. 소장으로 일하면서도 남편의 지지가 사회생활에 큰 버팀목이 됐다.
“젊어서는 남편이 사업 한다고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지 못했어요. 게다가 그전에는 남자가 설거지를 한다거나 빨래를 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죠.”(장기순)
“당시에는 아내가 힘들어 하는 걸 알면서도 어른들 눈치 보느라 쉽사리 표현을 못했어요. 마음으로만 많이 도와줬지.”(박하영)
1남 2녀의 자녀를 다 출가시키고 나서야 여유를 찾은 장 씨는 축산 일에 관심이 있던 남편을 따라 지난 2000년 낯선 홍성 땅을 밟았다. 그리고 이듬해 7월부터는 홍성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상담 치유에 힘쓰고 있다. 남편은 현재 축산업을 하는 성보농산의 고문으로 있다.
“4쌍 중 1쌍이 이혼할 만큼 부부문제가 심각한 요즘 사랑 없이 사는 부부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앞으로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박하영)
30년 전 취미로 등산을 시작했다는 이들 부부는 인생의 동반자로 오늘도 함께 산을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