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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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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26
  • 우흥식 기자
  • 승인 2007.06.28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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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요약 - 일본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호넹이라는 승려가 정토종이라는 불교문파를 만들었고 그의 제자 렌뇨가 정토종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내정을 만들었다. 사내정은 번성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은 후 정권의 경제적 기반을 잡기위해 공격하는 바람에 없어졌다고 일본인은 말했다.

요비코에서 보면 푸른 바다 저 멀리 조선 땅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생각하고 들뜬 군인도 있었고, 두고 온 가족 걱정에 잠 못 이루는 군인도 있었지만 나는 아득한 백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원효의 위대한 사상이 숨쉬고 있을 어떤 현자이 줄 감동과 기대를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 상륙하자 나는 고니시와 상의했습니다. ‘여기 상륙한 뒤 현지인과 무역을 해야 하는데 반감이 많을 것이다. 반감을 완화하려면 불교로 정신을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니시는 재빨리 말귀를 알아들었습니다. 고니시는 원래 어거스틴이란 세레명을 받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부산에는 길 양쪽에 노렌(상호명을 써서 늘어뜨린 막)을 내건 일본 사카이의 상인도 있고 감색 바탕에 힌 글씨로 이다미야니 오사카야니 새겨 넣은 상점도 보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술과 이부자리, 찻그릇 등을 팔았지만 여자나 노예 거래, 노획물의 감정 등 전쟁으로 한몫 보려는 못된 장사가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고니시의 양해로 나는 한 건물에 부산해 고덕사(釜山海 高德寺)라고 시커먼 먹글씨로 새겨진 나무 패찰을 걸었습니다. 사무라이들은 그걸 보고 일본에서 박살을 당했는데 여기 와서 회생을 하는구나 하고 놀라워했습니다. 나는 어쨌건 조선에서 혼간지의 몬토(門徒, 정토진종을 믿는 사람들) 재건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침략자의 종교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비참하였습니다. 전대의 모든 악업(惡業)이 쌓였는지 마치 복수의 신이 공중에 떠도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잔인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원한은 여기서 끊이지 않고 앞으로 오래 갈 것입니다.
하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 군인들의 억압 통치가 오래 가리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몇 십 년이 걸릴지 몇 백 년이 걸릴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씨앗이 묻혀 있으니 도리와 평화, 종교와 문화의 시대는 두 나라에 반드시 올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평생의 소원으로 백제의 고도를 보고 가려고 영수(領袖)의 묵계를 얻어 부하와 동생과 함께 목숨을 걸고 군대를 벗어나 부여에 왔습니다. 거기서 산천을 둘러보고 정토종 소식을 알아보다가 이렇게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지금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큽니다만 동생이 나를 돌봐주어 목숨은 부지하고 있습니다. 동생은 부하 고쵸 히로모토와 함께 겨울을 지낼 양식을 마련하고, 히로모토가 일본에 가서 배를 주선해 가지고 올 때까지 같이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이 왔다. 골짜기 얼음 아래로 물소리가 노래를 하기 시작하였다. 산에는 나물이, 나무에는 싹이 파릇파릇 돋아났다. 느릅, 다래, 두릅, 붉, 생강나무, 오미자, 오갈피, 옻, 으름, 조팝, 참죽, 칡, 팽나무의 싹이나 새 잎은 따서 더운물에 데치거나 우려내면 먹을거리가 되었다. 나머지는 말려 놓았다. 우용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각자의 귀틀집 부근에서 따서 원초가 만든 바구니에 담아 날랐다. 시관은 봄 부침으로 감자를 심었다.
갑쇠는 숯가마를 만들기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골짜기 밖에 소리가 안 들리게 조심조심 서툰 대장질 소리도 들리겠지. 산 식구들이 쓰는 낫이나 도끼는 만들겠지. 윤성은 봄이 되어 활동을 시작하는 벌통을 돌봤다. 길동은 팔뚝만한 칡은 찾아 캔 뒤 표가 안 나게 덮어두는 일을 했다. 한쪽에선 상길이 모내기 철 전에 다랑논을 만드느라 무지하게 큰 돌을 끙끙대며 굴려 오고 있었다. 몸이 가냘픈 원초는 짚신을 삼아 대고 지제와 바지개 또는 망태기를 부지런히 만들어 댔다. 모두 서로 도우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여름이 되어 산에는 녹음이 선명해졌다. 꾀꼬리 뻐꾸기의 합창이 대단하다. 선명한 노란색에 붉은 부리를 가진 꾀꼬리는 여름 숲의 귀공자다. 노란 눈 테와 배에 가는 줄이 있는 예쁜 뻐꾸기는 “뻐꾹뻐꾹‘ 하고 울다가 갑자기 ’꽥꽥꽥‘ 변조음을 낸다. 박새, 쇠솔새, 물레새는 하루 종일 꼬리를 쫑긋거리고 ’표르릉‘ 울면서 이 나무 저 나무를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다. 노랑 뻐꾸기와 대조적으로 호반새는 숲 속의 귀빈이다. 윗면은 적갈색 아랫면은 주황색에 허리에 파랑색 세로 줄무늬로 한껏 멋을 내고 고운 목소리로 아침저녁 특히 비 오는 날이면 ’코로로로로‘ 하고 아름답게 운다. ’케엣케엣 케케케켁‘ 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곳을 보면 검은 머리와 날개 끝을 빼고 온몸이 푸른 녹색인 파랑새가 나뭇잎 틈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오가며 ”어이, 시끄럽다, 임마!“ 하는 갑쇠의 밉지 않은 핀잔을 받았다. 그렇다고 개의할 새들이 아니다. 숲은 생의 천국이었다.
밤나무 꽃이 축축 늘어지게 피면 향내가 골짜기에 은은히 풍겼다. 꿀통을 옮기는 윤성은 마음이 흡족하다. 짐승을 좋아하는 원초는 자신의 먹을 것을 줄이며 새와 친해지려고 노력한 결과 새들이 따라다니게 되었는데, 때론 손바닥을 내밀면 솔새나 박새가 손 위에 앉아 먹이를 받아먹기도 하였다. 그는 겨울새 모이라면서 시관에게 조 농사를 부탁하기도 하고, 자기 귀틀집 옆에 조를 얼마 심기도 했다. 또 저녁이면 너구리 한 마리가 집 주위를 도는데 먹이를 주었더니 한 마리를 더 데리고 와서 아예 저년때마다 먹이를 얻어먹으러 귀틀집에 나타났다. 잊어버리고 저녁을 안주면 어두운 바깥에 파란 네 눈이 귀틀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길은 애쓴 보람이 있어 다랑논으로 칠 홉 마지기의 논을 떠 모를 꽂았다. 길동도 이제는 숲 속 생활에 차츰 익숙해졌다. 고비, 네가래, 산자고, 참비비추, 용둥굴레, 얼레지, 개감채, 산부추, 부들, 조팝나물, 쇠서나물, 보리뺑이, 절굿대, 각시취, 톱풀, 곰취, 솜방망이, 떡쑥, 초롱꽃잔대, 금마타리, 송이풀, 기린초, 가지괭이, 눈박주가리, 어수리 등 우용과 이런 나물을 따서 삼아 말리거나 녹말을 부지런히 만들었다. 갑쇠도 마침내 어설프게 낫과 호미를 만들고 찌그러진 모양이나마 질그릇도 구워 내기 시작했다.
길동의 만수산 식구는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을 같이 모여서 도울 뿐 아니라, 아흐레에 한 번씩 모임도 가졌다. 그것을 아흐레 모임이라고 하였는데, 사람 수가 아홉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은 것이었다.
아흐레 모임에서는 무량사의 저녁 범종 소리에 맞추어 서로 두손을 합장해 염불을 외고, 두 줄로 서서 맞절을 한 뒤,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며 자유롭게 이야기하였다. 모임을 마치면 모두 앉은 자리를 치우고 서로 맞절을 한 뒤 그 밤 안으로 조용히 헤어졌다.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공부도 하였다. 농사법, 건강법, 호신술, 불경, 한자, 역사 이야기, 피리 연주 등이었는데, 모두가 선생이고 학생이었다. 토론도 하였다. 몇 사람은 일본말 공부를 했다. 고쇼와 슈케이를 위해 시관이 조선말을 가르치기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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