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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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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24
  • 정리 우흥식 기자
  • 승인 2007.06.1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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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요약 - 신배정골에 들어온 길동 일행은 서로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의논하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겨울준비를 하던 중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을 발견하고 이를 뒤쫓던 길동은 목 부분 급소를 맞아 정신을 잃는데….

길동이 다시 살펴보니 한쪽 움푹 팬 곳에 칼이 놓여 있고, 솔잎과 찔레꽃 열매 한 가지가 접시에 장식되어 있었다. 그 윗벽에 금테 종이에 한자로 글씨가 써 있었다.


光名遍照 十方世界(광명편조 시방세계)
念佛衆生 攝取不捨(염불중생 섭취불사)
광명의 진리가 널리 시방의 온 세계를 비추니
염불하는 모든 중생을 다 받아주시리라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있는 말이다.

길동은 그들이 누구인지 대강 짐작을 하고 손짓을 하여 오른손을 풀게 하고 바위 바닥에 숯검정으로 무량사 극락전 기둥에 있는 영련(楹聯)을 한 줄씩 땅에 적었다.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玉毫金毛照虛空(옥허금모조허공)
若人一念稱名號(약인일념칭명호)
頃刻圓成無量功(경각원성무량공)
四十八願度衆生(사십팔원도중생)
九品含靈登彼岸(구품함령등피안)

극락당 앞에 달 모양이 가득하고
누구라도 일심으로 아미타불 이름을 외면
그 순간에 무한한 공덕을 이루리
중생을 구원하소서 사십팔 소원을 드려
정토의 영이 되어 피안에 오르리

그 사람은 눈을 동그렇게 뜨더니 아픈 몸을 일으켜 평지에 엎드려 땅에 글씨를 썼다.

余卽日本百濟地後孫也(여즉일본백제지후손야)
나는 일본인으로 백제의 후손입니다

그리고는 결박을 풀라고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계속 하였다. 그는 겉보기에도 여러 곳을 예리한 날에 찔려 중상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임진왜란에 참가했다가 본대에서 벗어난 일본의 군인들임이 분명하였다. 한 사람은 군관인 구미가시라(組頭)로 이름은 고쇼이고, 한 사람은 그의 동생 슈케이라고 했다. 다음은 그와 필담을 한 것을 홍길동이 적어서 뒤에 불목하니에게 전한 것이다.

일본사람이야기

우리는 일본에 사는 백제의 후손들입니다. 내 이름은 고쇼고 이 사람은 동생인데 슈케이라고 합니다. 이번 전쟁에 구미가시라(=군관)로 동원되었습니다. 백제가 번성할 때부터 패망 후에도 백제 사람들은 일본의 세쓰 지방으로 많이 이주하였습니다. 나니와라고도 불리는 세쓰 국에는 백제 유민들이 많이 살던 백제군(百濟郡)이 있었습니다. 백제군의 땅을 남북으로 나누는 히라노가와(平野川)에서 나아가 가와치(河內)와 와이즈미(和泉)는 일본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조선 사정이 그대로 일본에도 반영되어 왔습니다. 조선의 문화가 융성하면 일본에도 문화가 전수됩니다. 조선이 어지러우면 일본도 어지러워집니다. 조선에서 백제, 신라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면 거기서도 이주한 사람끼리 싸우게 됩니다. 백제 패망 후에는 백제 유민들도 목소리를 죽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껏 아득한 백제의 향수와 문화를 간직하며 사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때 일본에 정토종(淨土宗)이란 불교가 일어났습니다. 전란과 기근, 가난과 무지 속에 하루하루 살기에도 힘든 민중들에게 교의나 계율 같은, 스스로를 닦는 수양이나 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부처를 믿고 그 이름을 외면 구원이 된다는 타력의 교의를 가르치는 불교 교파입니다. 그들은 수행도, 경을 읽는 것도, 불상도, 절을 만들 필요도 없고, 진심으로 염불만 하면 누구나 구원된다고 했습니다.
염불은 아득한 하늘 저편에서 오는 빛을 하잘 것 없는 인간이 받아들이는 위로였습니다. 그 위로를 느끼는 이들에게는 어떤 죄업을 지었거나 어떤 직업으로 생계를 꾸려 가거나 층하가 없고 모두 가족과 같을 뿐이었습니다. 외국에서 건너와 낮선 땅에 떠돌던 백제인에게도 그 믿음은 영혼을 진정시켜 주고 재생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불교에 대해 좀 아는 백제인 후손들도 정토종이야말로 불교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높은 경지라고 말하였습니다.

깊이 믿어라, 염불하라, 조금도 스스로 도모하지 말고 부처님의 힘에 맡기라.
그 마음의 상태가 구원이다. 거기서 기쁨과 안심이 있다.

그 믿음을 일본에서 처음 가르친 사람은 호넹(法然)이라는 덕이 높은 불승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러러 뵈는 그가 하루는 백제마을을 일부러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제인의 손을 잡으며 자기 어머니 고소(孤會)가 백제인이라 어려서 백제 말을 썼고, 아홉 살 때 아버지 지고쿠(時國)가 정적의 칼에 맞아 죽는 자리에서 복수를 하지 말고 나와 남이 평등하게 이익을 도모하는 대도를 닦으라는 유언에 따라 백제인 삼촌을 통해 히에이 산 불문에 들어갔는데, 처음에 핏줄도 다르고 문맥(門脈)도 없어 차별을 받았기에 남의 나라에 와 사는 설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며 백제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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