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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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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다
  • 이상헌 홍성예총 지회장
  • 승인 2023.05.08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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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가 신년 초였는데 어느새 오월의 문턱에 들어섰다. 식당에 가면 3대가 한자리에서 모여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즐긴다. 며느리가 상추쌈에 고기를 싸 어머니한테 드린다. 손자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는 넌지시 아름다운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손자 손녀를 선물한 대견한 아들과 며느리가 사랑스럽기만 하다.

‘요새 건강하게 잘 근무하느냐’, ‘어찌하든 상사한테 미움받지 말고 동료들과 잘 사귀어라.’ 장성한 아들을 보면서도 미덥지 않아 잔소리가 늘어간다. 깔깔깔 호호호 웃음잔치가 벌어진다. ‘할아버지 담배 피우지 마세요, ’술 마시지 마세요. 건강에 안 좋아요‘ 손주 녀석들의 잔소리가 이어지지만 화내지 않고 웃기만 한다.

’그래, 알았다. 안 피우고 안 마실게’라며 손주를 끌어안고 꺼칠한 턱수염으로 손주의 뺨에 비빈다. 좀 따갑지만, 손주 녀석은 할아버지를 밀어낼 생각하지 않고 할아버지 가슴에 안긴다. ‘아빠도 일찍 들어오세요. 엄마는 맛있는 것 많이 만들어줘야 해‘.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이들도 부모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다. 너무 엄격하게 훈육하셨고 근엄하셔서 같이 있기가 싫었다. 아버지는 호랑이같이 무서운 존재였다. 아버지께 말씀드릴 것은, 어머니한테 먼저 이야기하고 어머니가 대신 내 이야기를 전달하였다. 수염을 기르신 모습은 보기만 해도 엄해 보였다. 친구들이 아버지를 상헌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 수염 기르신 모습이 엄청 싫었다. 그렇게 싫었었는데 나도 은연중 아버지를 닮아 수염을 기르고 자식들을 엄격하게 키웠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모습을 따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라고 불렀지,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엄마’를 ’엄니’라고 부르고 더 나이 들어 어머니라고 불렀다. 정신대 끌려갈까 봐, 열일곱에 시집오셔서 아홉을 낳았다. 두 살 터울과 세 살 터울인 우리 집, 이십 수년 동안 배 불러있었고, 차디찬 개울가에서 기저귀를 빨았다. 내가 돈을 벌기 전에 돌아가셔서 나는 그 흔한 자장면 한 그릇을 못 사드렸다. 나도 어느새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엄격하게 가르쳐 아이들이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더 따스한 손길과 온화하게 말할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아빠‘, ’어머니‘ “맛있는 것도 잔뜩 사드리고 좋은 곳 구경시켜 드릴게요” 하고 큰 소리로 불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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