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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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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꽃
  • 조종수 수필가
  • 승인 2023.01.09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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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수도회는 유럽에서 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처음으로 실시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했던 영국인 ‘메리 워드’ 수녀에 의해 1609년 창립된 최초의 여성 활동 수도회이다. 오늘날 메리 워드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 23개 국가에서 1400여 명의 회원이 이웃의 구원을 위해 투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대전에 본원을 두고 220여 명의 회원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크고 작은 경비가 필요하게 마련인데 많은 사람들이 후원회에 가입해 매월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나도 오래전 후원회에 가입해 매월 1만원씩 자동이체를 통해 후원하고 있는데 벌써 10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가입 당시 1만원으로 독거노인 한 명에게 일주일 치 반찬을 해드릴 수 있다는 말에 기꺼이 후원하기로 한 것이다.

한 달에 1만원은 많지 않은 금액이고 또 자동이체를 신청해 놓았으므로 기부금을 냈는지 안 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후원회 담당 수녀님은 매 분기마다 그동안의 활동 소식과 좋은 글들을 담은 편지를 보내 주신다. 특히, 3월쯤이면 여러 가지 꽃씨를 작은 봉지에 담아 함께 보내 주시는데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마땅히 심을 데가 없어 아파트 화단에 뿌리고는 별 관심 없이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 봉지 속에 해바라기 씨앗 4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좀 특별한 생각이 들어 직장 사무실 앞마당에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농가에서 발효된 퇴비를 얻어 넣은 후 흙으로 덮고 그 위에 해바라기 씨를 조심스럽게 심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조석으로 물을 주고 틈틈이 싹이 나오는지 관찰하는 일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그때는 봄 가뭄이 길었던 때라 더 정성스럽게 물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싹이 나오지 않더니 비가 조금 내려서인지 출근을 해 보니 새싹이 하나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기뻐서 날아갈 듯 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는 더욱 정성을 다하여 물을 주고 바람에 부러지지 않도록 지주목을 세워 주었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 도로변 곳곳에 보이는 해바라기는 이미 꽃을 피웠지만 내가 심은 해바라기는 ‘잭과 콩나무’의 동화처럼 줄기만 무성하게 커갈 뿐 꽃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정성을 쏟았건만 결과가 보이지 않으니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꽃피기는 틀렸다고 하면서 미관상 좋지 않으니 베어 버리자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키운 정성이 아까워서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하였는데 여름이 다 가도록 키만 계속 커 갈 뿐이지 꽃 봉우리가 맺힐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거름을 너무 많이 주어서 웃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분을 먹느라 꽃 피는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들은풍월대로 생육환경을 좀 나쁘게 해주면 종족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우지 않을까하여 밑에서부터 잎을 따 주었다.

그래서인지 8월이 지나고 9월이 되었을 때 작은 꽃 봉우리가 들어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몸집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이 거대한 해바라기 꽃을 보고 신기한 듯 인증 숏을 찍어댔다. 꽃이 핀 후 나는 틈틈이 해바라기 꽃을 감상하고 혹시 부러질까 관리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 두면 씨가 썩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어 조심스럽게 꽃대를 잘라 사무실로 가져왔다.

책상 위에 세워놓고 농부가 느끼는 수확의 기쁨을 최대한 느낀 다음 충분히 마른 씨앗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따서 큰 봉투에 가득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봄이 되어 씨앗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양해주고 사무실 주변에 울타리처럼 빼곡히 심었다. 이 품종은 원래 키가 큰 품종이었던지 사람 키보다 더 크게 무럭무럭 자랐다. 한번 이 꽃의 특성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무도 키만 커진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꽃필 시기가 아직 안 돼서 꽃이 안 핀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자신도 이 해바라기의 경우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할 때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선입견이나 전해들은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다. 인연이 되어 함께해보면 이러한 정보들은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좀 더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후원회에 가입해 해바라기 씨앗을 받게 되면서 얻게 된 깨달음이다. 1만원의 작은 후원금에 대한 답례가 흥부의 박씨처럼 고맙다. 그리고 나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는데 언제 꽃을 피울지 걱정이 많다. 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그래서 기다려보면 커다란 꽃을 피울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래서 그때까지 조용히 응원하면서 기다려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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