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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잘라놓은 곱두리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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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잘라놓은 곱두리고개
  • 김정헌 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23.01.09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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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에 서려 있는 조상들의 숨결 14
은하면 화봉리 야동마을 모습.
야동마을에서 바라본 곱두리고개 모습.은하

우리고장 홍성군 은하면 화봉리에 야동(冶洞)마을이 있다. 야동마을은 은하면과 광천읍의 경계를 이루는 지기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야동마을은 지기산 줄기 아래로 긴 골짜기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기산 줄기가 팔을 늘어뜨리듯이 야동마을을 길게 감싸면서 흘러내리고 있다. 이 산줄기는 야동마을과 광천읍 상정리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야동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광천읍 상정리 덕정마을이다. 야동마을과 광천읍 상정리를 가로막고 있는 산줄기를 넘어가는 고개는 ‘돗고개’, ‘등턱고개’, ‘곱두리고개’ 등 여러 고개가 있었다.

그중에서 야동마을 불무골에서 광천읍 상정리 덕정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곱두리고개’라고 부른다. 산고개가 비교적 높지 않지만 깊은 계곡을 넘어가듯이 꼬불꼬불 길게 이어져 있다. 산으로 막힌 마을에서 외부로 나가는 고개가 길고 꼬불꼬불하며 돌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옛날 야동마을 곱두리 고개 아래로 욕심 많은 이씨가 살고 있었다.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옆집과 찬물 한 모금 나눠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욕심 많은 이씨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마을에 사는 지관에게 아버지의 산소자리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을에 사는 지관은 평소에 이씨의 욕심 많은 행동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씨 아버지의 산소자리를 잡아 주면서 산소 아래를 잘라야 집안이 잘된다고 귀띔해줬다. 이 고개는 건드리거나 잘라내면 안 되는 곳이었다. 이씨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지관이 거짓으로 고개를 잘라내라고 가르쳐준 것이었다. 욕심 많은 이씨는 산소를 쓰면서 지관이 가르쳐준 고개 주변을 잘라내었다.

어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개를 잘라내는데 붉은색 핏덩이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말 한 마리가 튀어나오며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뒤로 이씨네는 완전히 몰락하고 마을을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은하면 화봉리 야동마을 불무골에서 광천읍 상정리 덕정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곱두리고개’라고 부른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곱두리고개 주변을 강제로 잘라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곳곳의 명당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은 쇠말뚝을 박거나 길을 내어 기를 끊어내는 못된 행동을 했던 것이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에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터가 있다고 전해왔다. 산아래 불무골에서 언젠가 나라를 살리는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옛날부터 전해 오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인들이 산줄기를 끊어내었다고 한다.

불무골 아래에서 바라보면 거문고를 타는 미인이 팔 한쪽을 자른 것처럼 보인다. 야동마을과 광천읍 상정리 주민들은 명당이 훼손되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조국광복과 함께 양쪽마을 사람들이 직접 흙을 지어 나르며 잘린 자리를 이어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들이 곱두리고개 전설로 만들어졌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옛날이야기는 기억에서 멀어지고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양쪽 마을로 넘나드는 고개에는 차들이 통행할 수 있는 포장도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넘어 다닐 수 있는 고갯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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