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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토끼야! 코로나 쫓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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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토끼야! 코로나 쫓아주렴!
  • 이은집 광천중 11회·작가
  • 승인 2023.01.02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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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 꽁트

“에비! 어서 썩 물러가거라! 아예 뒤두 돌아보지 말구 왔던 길루 멀리 멀리 가란 말이여! 에비!” 누구나 한해를 보내는 송년의 길목에선 흔히 다사다난했다고 하는데, 2022년 흑호랑이의 해인 임인년도 드디어 종말을 고하는 12월 31일 아침에 마누라가 주방의 식탁 벽에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2023년 새해 달력으로 바꾸어 걸며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었다.

“어허! 당신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요? 누구더러 썩 물러가라구 흰소리를 하느냔 말이여!” 이에 내가 멀거니 마누라를 바라보며 묻자 대꾸가 더욱 뜻밖이었던 것이다. “아유! 당신은 2022년 올해가 징그럽지두 않유? 난 아주 뒤돌아보기두 끔찍헌듀!” “아따! 난 한해가 저물어 또 한 살 나이를 먹는 게 억울헌디! 가는 세월이 뭐가 좋다구…”

“아유! 벌써 까맣게 잊었슈? 흑호랑이해인 임인년 올해는 얼매나 끔찍헌 일들이 많었슈? 100여 년 만의 가뭄과 홍수에 특히 지난 가을의 이태원…” “어이구! 안 좋은 일은 빨리 잊어야지! 암튼 그나저나 나이는 먹어두 새해 계묘년 토끼띠해인 2023년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잖남?”

“야아! 토끼는 민첩하고 날래며 새끼를 많이 낳아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짐승인께 좋은 새해가 될 것이구먼유!” “암만! 특히 인구절벽으루 고민인 우리나라엔 다산이 국가적 희망인디, 처녀총각들이 모두 토끼를 닮아 빨리 결혼해 삼신할머니께서 복덩이 자식을 쑥쑥 낳게 해 주셨으면 정말루 좋겠네유!”

이리하여 마누라가 새해 달력을 거는 동안 우리 부부는 이런 덕담을 나누게 되었는데, 순간 나에게 떠오른 전설이 있었다. “여보! 근디 해마다 달라지는 열두가지 띠가 어떻게 해서 정해졌는지 알어? 쥐띠, 소띠, 호랑이띠, 토끼띠, 용띠, 뱀띠에, 그건 옛날 옛적 한 옛날에 옥황상제께서 여러 짐승들을 불러 모아 경주를 시켰는디, 소가 가장 부지런해서 하루전에 출발해 일등으로 들어오는 순간, 쥐가 소의 등에 타고 있다가 냉큼 먼저 뛰어내려 첫번째 쥐띠가 됐대요! 그렁께 소는 두번째 띠가 됐구, 호랑이가 빨라서 세번째 띠! 토끼는 거북이랑 경주할 때와 달리 열심히 달려서 네번째 띠가 됐다네 그려!”

“아이구! 워쨌거나 토끼띠 해인 계묘년! 2023년 새해에는 그저 만사 형통하고 세상이 태평스런 새해가 됐음 좋겠구먼유!” 마누라의 이런 소망을 듣는 순간 나에게는 어려서 내 고향 청양에 살 때 토끼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어이! 동네 사람들 여러분! 오늘처럼 눈 내린 날에는 산토끼 사냥이 제격인께유! 모두들 작대기를 들구 나오시란 말유!” 아침부터 기와집 머슴 만복이가 집집마다 소리치고 다녀, 우리 동네사람들은 어른 애 할 것 없이 작대기를 들고 갈대산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산토끼는 앞다리가 짧아 산등성이는 잘 올라가두 내리받이는 잘 못헝께 제기 징을 쳐서 산토끼가 튀어나오게 허면, 모두들 산등성이에 포위해 있다가 작대기루 때려잡으란 말예유!” 기와집 만복이의 지시에 따라 우리 동네사람들은 산토끼 사냥을 했는데, 글쎄 10여 마리나 잡아서 동네잔치를 하게 됐던 것이다.

“야! 은집아! 너 우리집에 놀러 갈래! 우리 집 토끼가 새끼를 열 마리나 낳았는디, 젖뗄 때가 되어 너한티두 두 마리만 줄게!” 반에서 가장 키가 컸던 조흥복이가 나한테 이리 말해서 나는 기뻐하며 걔네 집에 따라갔는데, 뜻밖에도 흰토끼가 아니고 까만 흑토끼였던 것이다. “은집아! 흑토끼가 크기두 잘 허구 암을 붙이면 새끼두 많이 낳는단 말여!” 그리하여 나는 그 해에 흑토끼가 한 달에 한 번씩 새끼를 낳아 팔아서 월사금을 내기도 했던 것이다.

“에헤! 흰토끼보담 흑토끼 가죽털로 귀마개를 만들면 아무리 추운 날씨래두 귀가 따뜻해서 추위를 이길 수 있단다!” 아버지께선 이리 말씀하시며 겨울 동안에 토끼고기를 먹고 토끼털로 귀마개도 만들어 주셔서, 나는 추운 줄 모르고 한겨울을 지냈던 것이다. 내가 이런 토끼에 얽힌 추억에 잠겼는데 마누라가 한마디 건네 왔다.

“아이고! 여보! 토끼는 특히 영리하고 사람에게 이로운 짐승이니, 새해 계묘년 흑토끼의 해에는 3년 동안이나 온 세계를 괴롭히는 코로나두 싹 쫓아내는 흑토끼의 해가 됐음 참말루 좋겠네유! 안 그류?”

이은집 약력
이은집 작가는 광천중학교(11회)와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30년간 교직생활을 했다. 1971년 <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문단에 데뷔해 <통일절>, <스타탄생>, <눈물 한 방울>, <부부찬가> 등 32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알베르 카뮈 문학상, 헤르만 헤세 문학상,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문학상, 한국문학신문 문학상, 한국문인상 본상, 충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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