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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이들과 행복한 하루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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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이들과 행복한 하루를 꿈꾸며
  • 안정순 장곡신나는지역아동센터장
  • 승인 2022.10.09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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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면에서 아이들을 만난 지 벌써 11년이 되었다. 마을공부방에서 1년, 지역아동센터로 10년. 농사를 짓기 위해 홍성으로 내려와서 처음 겪었던 어려움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었다. 서툰 농사를 지으며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런 여성농민들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홍동의 여성농업인센터에 공부방이 생겼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런 경험이 자연스럽게 장곡에 이어져서 지금까지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면 지역에 사설학원 하나 없어 학교 외에는 갈 곳이 전혀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가정, 특히나 여성의 몫이다. 예전에는 한 가정에 형제가 여럿 있고, 마을에 또래가 많아서 학교가 끝난 뒤나 휴일, 방학 때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오히려 때를 거르면서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할까, 어른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필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정이나 마을에는 같이 놀 또래들이 사라지고 어른들은 농삿일이나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을 보살필 시간을 빼앗겼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심심하고 지루한 시간을 TV나 컴퓨터, 그리고 핸드폰을 하며 보낸다.

장곡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부모님들 대부분은 농사를 지으셨고, IMF의 영향으로 시골 할머니댁으로 온 아이들이 많았다. 농삿일이 바쁜 부모님들이나 육아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이들의 요구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농번기에는 더더욱 아이들을 돌보기가 힘들어 돌봄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 부모들 대부분이 농사와 직장을 병행하는 실질적인 맞벌이가정과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한부모가정이 부쩍 늘었다.

이제는 농번기뿐 아니라 일년 내내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부모들에게는 큰 과제가 됐다. 도시라면 집 가까이 학원이 있어서 보낼 수 있을 텐데 장곡면에는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학원이나 시설이 전혀 없어 그럴 수도 없다. 물론 그동안 학교의 기능도 많이 바뀌어 돌봄교실이 생기고 방과후교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마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장곡면에서는 지역아동센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과 부모들, 또는 지역의 상황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안전한 보호, 다양한 교육과 문화, 정서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럼 장곡센터는 마을 돌봄을 위해 아이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까? 첫째는 아이들이 물리적, 정서적으로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간식과 식사(학기 중에는 저녁식사, 방학에는 점심식사)를 통해 필요한 영양을 제공할 뿐 아니라 집까지 차량운행을 하여 안전하게 데려다준다. 최근에 급식비도 오르고 친환경농민단체의 지원으로 친환경 식재료 사용이 크게 늘었다.

질 높은 급식과 차량운행은 면지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장곡면의 경우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다보니 한 마을에 한두 명씩 아이들이 흩어져 있다. 집에서 학교, 집에서 센터가 매우 멀다는 얘기다. 버스 배차도 아이들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하여 누군가 차량으로 데려다주지 않으면 학교나 센터, 친구 집에 갈 수 없다.

둘째, 기초학습지도와 학교숙제지도, 예체능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는 아이들이라 학기 중에는 학습부분을 크게 강조하지는 않는다. 교과 위주의 학습보다는 아이들의 희망에 따라 구성된 소규모 동아리활동과 놀이를 통한 신체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셋째, 공연이나 영화관람, 캠프 등의 문화체험활동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센터 초기부터 아이들과 부모님이 가장 선호하는 활동이다. 특히 방학 때 진행하는 1박 2일의 캠프는 아이들이 장소와 내용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진행까지 맡아하는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다.

넷째, 시간이 지나며 점차 역할이 커지고 있는 정서지원활동이다. 아동뿐 아니라 부모님과 가족, 학교 교사와의 상담활동을 통해 아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희망사항들을 듣고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 또한 학기 초에 가정방문을 하고 있는데, 아이를 이해하고 필요한 돌봄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섯째, 지역연계활동이다. 사실 위의 활동들은 너무 광범위해서 아동센터가 혼자 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을이나 행정, 외부 후원기관들과 연계해 진행한다.

2020년 이후 우리는 코로나상황을 겪으며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코로나로 학교의 문이 닫히고 아이들이 집에서 비대면으로 학교수업을 대체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 무척 낯선 경험이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아이가 지역아동센터를 다니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들 한다.

올해 홍성군은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군에서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그 과정이 너무 숫자로 진행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은 아이들이 많은 마을이나 적은 마을이나 똑같이 중요하다. 오히려 인구소멸위기에 직면한 면지역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 마을들이 좀 더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농촌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난 20년 동안 장곡면 인구가 35.9% 감소하는 동안 15세 이하 유소년 인구는 74.1% 감소했다. 마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는 오늘도 왁자지껄 모여드는 아이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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