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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불확실성 커진 미래, 농업의 사회적 가치 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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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불확실성 커진 미래, 농업의 사회적 가치 돌아봐야”
  • 조성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의장
  • 승인 2022.10.0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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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 장정우

자식을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키워야겠다고 결심한 부모님은 그가 일곱 살 되던 해 겨울 홍성으로 귀농했다. 벼, 보리, 감자, 마늘, 고추, 아욱, 완두콩, 철 따라 온갖 채소와 알곡들이 자라는 부모님의 논밭은 그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였다.

학업과 군 복무로 잠시 홍동을 떠났던 그는 청년이 되어 돌아왔다. 대학과 도시의 삶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생태주의적 농(農)을 통한 ‘자립과 자급’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스물셋, 막 군대를 제대하고서였다. 처음엔 풀무학교생협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귀농 30년 차 부모님이 일궈놓은 농지에서 농사를 지으면 먹을거리 등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자급할 수 있지만 불가피하게 현금으로 지출 되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가외로 돈벌이가 필요하다. 풀무학교생협 6년과 산림살림에너지사회적협동조합 3년을 거치면서 마을공동체에 필요한 일꾼으로 거듭 성장했다. 그는 2021년부터 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로 각종 개발사업으로부터 농지를 지키고 농민의 권익을 옹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산업단지, 폐기물처리장, 송전탑 건설 등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농촌파괴형 개발사업으로 농지를 빼앗기고 대대로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농민들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현장에 ‘농본’ 활동가이자 같은 농민으로 그가 있다.

추수가 시작되는 9월의 농촌은 정말 바쁘다. 일요일인 지난달 25일 오후 3시 홍동면 마을활력소에서 장정우(32·홍동면 구정리) 씨를 만났다. 어제는 광화문에서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고, 방금 전까지 수확한 벼 나락을 아스팔트에 말리는 작업을 갈무리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자급·자립하는 삶 위해 유기농업 뛰어든 청년농부

△ 요즘 쌀값 폭락으로 농민들은 풍년 농사를 지어놓고도 기쁨보다는 걱정이 크다던데요?

= 쌀값 하락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소비량 감소이고, 두 번째는 정부에서 쌀값을 올리겠다는 신호가 없기 때문에 다들 기다리는 것 같아요. 기다릴수록 떨어지니까. 그나마 내년에 농협 조합장 선거가 있어서 어느 정도는 농협에서 막아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 같아요. 정부가 쌀값 인상을 위해 시장격리를 한다 해도, 쌓아둔 양곡은 쌀값이 조금만 올라가도 소비자 물가안정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저렴하게 시장에 푸는 매커니즘이예요. 마늘이나 고추 심지어 파 같은 채소까지도 가격이 오르면 바로 수입을 해버리잖아요. 사실 서민들의 가계 부담을 가장 크게 압박하는 요인은 전월세 인상 같은 부동산 문제가 크지 농산물 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10% 미만이거든요.

△ 우루과이라운드협상 이후 전면적인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농가 수입이 워낙 적다 보니 농민들이 농업을 포기하거나 자식 세대에게 농사를 물려주는 것은 꿈도 못 꾸게 되었죠. 농촌인구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촌의 인력의 공백을 채워줬는데 코로나로 최근 인건비가 무섭게 올랐어요.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 정부기관이나 단체, 농업 관련 세미나 같은 데 나와서 농민을 옹호해주고, 농촌이나 농민 문제를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분들조차도 이제는 어떤 벽 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분들의 발언을 듣다 보면 농업에 대한 가치관, 농민들이 공유하는 정서를 이해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어떻게 말을 해야 농민들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계속 짓고 있고, 자식들한테 농사 지으러 오지 말라는 마음은 어떤 것이며, 쌀값이 이래도 내년에 또 그냥 열심히 쌀 농사 짓게 되는 그 속 깊은 생각이나 정서를 사람들한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요즘 하고 있어요.

△ 무엇보다 농업, 농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다뤄지지 못하고, 지금의 국회나 중앙의 정치권에 농민을 대표할 만한 사람이 아예 없잖아요. 국가 차원의 어떤 정책이나 법안이 만들어질 때 농민 당사자들의 의견이 얼마나 옳게 반영되는지도 모르겠고요. 우리나라가 서울 등 대도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지역, 농촌 없이 도시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요? 농지와 농민이 사라지는 것은 단지 식량자급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천년 이어져 온 우리의 생태주의적 농경문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생명을 길러내는 어떤 고귀한 삶의 양식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농사를 지으면서 국회 같은 큰 단위의 일에 참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부담이 커요. 농민은 아주 미시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자기 땅에 대해서는 전문가고 엄청 능력 있지만 군청이나 도청의 어떤 위원회에 들어가거나, 단위가 커질수록 점점 더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잃게 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제 생각은 농민들의 생활권인 읍면지역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어요. 면 단위 정도 되면 농민이 자신의 삶을 토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돼요. 이장협의회나 주민자치회 하는 거 보면 의견에 힘이 실려 있거든요. 주민총회 같은 것도 홍동에서 해보면 뜬구름 잡는 소리가 없어요. 실질적이고 효능감이 높아요. 중앙정부나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자치권을 보장해주면 자연적으로 전체 농민들의 발언권이 세지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도 세지는 게 아닐까요?

△ 우리 동네의 문제를 도청이나 중앙정부까지 가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요즘 ‘농본’의 가장 큰 이슈는 뭔가요? 9월 21일 충북 청주에서 산업단지로 인한 농촌지역 피해 조사결과 발표와 토론회도 열었지요? 인구감소로 소멸의 위기에 처한 전국의 지자체들이 인구유인책으로 산업단지를 비롯한 개발, 공장유치, 농촌관광 활성화 같은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헐값에 농지를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내줘야 하는 농민들의 반발도 크고요. 이러한 자기파괴적 난개발이 대안이 될 수 없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 최근 산업단지가 추진되는 곳은 주로 농촌입니다. 비록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고 있지만 공동체가 살아있고 사람이 사는 마을이잖아요. 산업단지 추진과정에서 자연경관과 농지가 훼손되고 끈끈하게 유지되던 이웃 간의 유대관계에 금이 가는 위기를 겪게 되요.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나면 폐기물처리장도 뒤따라 들어오고 외지에서 유해성이 강한 폐기물까지 들어오면 결국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는 거예요. 산업단지가 인구유인책으로 지자체 전체의 세수가 증가하고 주민등록상 인구가 늘 수도 있지만 산업단지가 소재한 면 지역은 실제로 인구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어떤 지역 주민들이 개발 행위에 반대한다는 건 사실은 농촌이 어떤 도시에 대응되는 종속적인 공간이 되기보다 지역 자체만으로도 그냥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남아야 된다는 걸 말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 논 6000평, 밭 3000평 정도의 농토에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했지요? 이상기온 같은 기후변화로 농사 짓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던데 어떤가요?

= 올 봄엔 아침에 이슬이 없을 정도로 가뭄이 심했어요. 전에는 논에서 만큼 밭에서 나오는 소득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근래엔 밭작물이 잘 안 되고 어려워요. 고라니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 피해도 있고 벌레나 잡초도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 사회의 농업의 가치에 대한 무시와 무관심입니다. 유기농은 더 그렇죠.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을 고수하니까. ‘농본’이 할 수 있는 일이 법을 가지고 싸우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 다 가치관을 다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농촌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한테도 와 닿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하죠.

귀농한 부모님 슬하에서 가족농의 일원으로 자연스레 농사에 참여하면서 자란 그는 대학에서 만난 도시의 친구들이 벼가 어떻게 생겼는지 감자와 딸기 같은 농작물이 어느 계절에 나는지 알고 있는 친구가 거의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으로 음식과 지식을 소비하는 대학생활에 회의가 들었고,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급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홍동으로 다시 돌아오게 했다.

그렇게 농사를 지으면서 스스로 자급할 수 있게 됐고, 어딘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언제나 당당할 수 있어 좋다. 어려움도 있다. 농업·농민이 국가정책에서 소외되고, 너무 낮은 농업 소득 등 지속하기 어려운 현실도 엄연하다. 그는 ‘사유’와 ‘공유’의 개념으로 산업단지와 농지의 차이를 설명한다. 산업단지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폐쇄적이고 매우 사유화된 공간이고 이곳에서 발생하는 폐수나 산업쓰레기는 자연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반면 농지는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논둑길을 산책할 수도 있고, 농사에 사용된 흙과 물, 볏짚 같은 부산물은 그대로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어 공공성이 크다는 것이다. 생명 순환의 촉매재이자 자연의 일부로서 농지와 농업이 가진 공공의 가치를 우리는 자본의 논리만 앞세워 너무 쉽게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Studio H 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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