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습니다. 시작은 여느 산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임도입니다. 동행한 아이들은 이제 시작이라 힘이 솟는지 오르막을 다람쥐인 양 쪼르르 미끄러지듯 오릅니다. 아침에 산책하러 나가자고 제안할 때는 엄마가 어쩐 일인지,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오래 걸어야 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끝없이 질문해대던 아이들입니다.
딱히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엄마가 같이 가고 싶다니 딱 잘라 거절 못 하고 이리저리 빠져나갈 구멍을 찾다가 포기하고 반쯤 끌려 나온 아이들입니다. 숲 아래 풀어놓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뛰고 구르며 산길을 즐깁니다.
장곡면 상송리는 좋아하는 언니들이 사는 동네고, 이곳 뒷산은 밤이 생각나는 늦가을 날에 가끔 들러서 슬쩍 주워 먹던 곳이라 낯설지 않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곳, 숨은 비경이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바로 이곳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금비레저는 골프장 지어서 돈을 벌고, 골프인들은 돈 내고 골프를 즐길 곳을 보장받고, 홍성군은 땅도 팔고 세수도 늘리고 지역경제도 활성화하겠다는 계산인 것 같습니다. 그 모든 요구와 계산들이 액면 그대로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내놓아야 할까요?
반 시간 남짓 걸었을까, 벌써 지친 것인지 막내 먼저 낙엽 위에 털썩 주저앉습니다. "밤 가시 조심~". 임도에서 샛길로 들어서니 낙엽 쌓인 길이 푹신푹신합니다. 누워서 향긋한 숲의 냄새를 맡습니다. 가방을 풀어 간식거리를 내놓습니다. 30분이면 산책이 끝날 줄 알았는데, 마을 뒷산 길이 이리 길 줄 몰랐다면 너스레를 떱니다.
잘못하다간 길을 잃을 수도 있겠는걸, 슬쩍 겁도 줘봅니다. "저기 리본 있잖아요?", "정말 그러네. 길 잃을 걱정은 없겠다, 흐흐…." 아이들과 숲을 즐기면서 걷는데 어느덧 풍경이 바뀝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올라왔어요? 발 저 아래로 산등성이와 마을이 내려다보입니다. "저기, 고라니 간다!", "어디 어디?" 잠깐 걸었는데 큰 산 능선을 타고 있는 듯한 풍광을 만끽하며 산모퉁이 돌아선 순간, 눈앞에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오서산이, 눈과 맘으로 뛰어 들어옵니다.
“와~!”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지금 이곳으로 산책 나오시겠어요? 우리는 보물들에 둘러싸여, 덕분에 살아갑니다. 보물인지 모른 채로 살다가 그것이 사라지면 그제야 그것이 보물이었음을 알아챕니다.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헤매다가 돌아온 틸틸과 미틸은 차라리 귀엽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파랑새를 죽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수없이 숲을 베고 산을 깎고 강을 메워 집을 짓고 농지를 만들고 공장을 세우고 축사를 지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집에서, 주리지 않고, 차를 굴리며 편리하고 안락하다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빨리! 가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불안증에 휩싸여 멈출 때를 모릅니다. 이만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들을 있는 그대로 감사하게 누려보면 어떨까요?
산을 다 내려와 아이들은 비밀스러운 대나무숲 오솔길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나무를 껴안아 숲을 지킨 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들과 상송리 뒷산 숲길을 지키겠다는 마을 분들이 간절함으로 겹쳐집니다. 공원이나 논길로는 허전함이 달래지지 않을 때, 고즈넉한 곳을 걸으며 나와 마주하고 싶을 때, 아이가 자기 앞날을 두고 같이 고민하고 싶어 할 때, 오해로 어긋나 있는 친구와 그저 걷다가 마음이 저절로 내놓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이 소박하고 정겹고 아름다운 이곳을 함께 지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