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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 된 할매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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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 된 할매바위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9.01.21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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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지해수욕장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꽃지해수욕장은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2009년에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가 꽃지해수욕장 주변에서 펼쳐진 이후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꽃지해수욕장에는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백사장과 함께 바다 가운데 우뚝 서있는 할매바위와 할배바위가 유명하다. 물이 들어올 때는 바다 위의 섬이 되고, 물이 빠졌을 때는 육지와 연결되어 하루에도 여러 번씩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경관을 연출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백사장을 따라서 두 바위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다.

 또한 할매바위와 할배바위 너머로 붉게 물드는 낙조는 태안의 아름다운 풍광 중에 으뜸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위 뒤로 넘어가는 일몰경관이 뛰어나서 우리나라 서해안 낙조 감상의 대표적인 명소로 유명하다. 변산의 채석강, 강화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의 3대 낙조’로 꼽히는 곳이다. 이런 이유로 일 년 사시사철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꽃지해수욕장의 명칭 유래는 해당화와 관련이 깊다. 길게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가며 해당화가 아름답게 피어서 ‘꽃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꽃지해수욕장의 상징인 할매바위는 바다 가운데 할머니 모양의 구부정한 모습으로 높게 솟아있다. 이 바위가 전설을 간직한 할매바위이며, 맞은편에 할매바위보다 크고 둥근 모양의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할배바위라고 전해온다. 두 바위가 노부부처럼 서로 애틋한 모습으로 마주보고 서있다.
 
 옛날부터 두 바위에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시대 바다를 주름잡던 해상왕 장보고는 청해진(지금의 완도)에 군사 거점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바다에서 무역선을 괴롭히던 해적을 없애고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장보고는 안면도 견승포(꽃지 해수욕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 방포해수욕장)에 전진기지를 설치했는데, 이곳의 최고책임자인 기지사령관은 승언이라는 장수였다.

 승언은 오랜만에 아내와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승언이 지키는 안면도 바다에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시간만 나면 아내와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승언과 아내는 어찌나 금슬이 좋은지 한시도 떨어져서는 못살 정도로 정이 좋았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청해진 본부에서 급히 출정하라는 연락이 왔다. 승언은 군사와 무기를 정비하여 출정준비를 서둘렀다.

 출정 날 아침에 두 부부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아내는 남편의 품에 안겨서 떨어질 줄 몰랐다. 예전에도 싸움터로 나가는 남편과 여러 번 작별인사를 했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특별한 예감이 밀려왔다. 왠지 모르게 남편을 바다로 보내는 느낌이 불안하기만 했다.

 “여보,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빨리 오셔야 해요.”

 아내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무사히 돌아오라는 말만 여러 번 되풀이 했다.


 “이번에도 해적과 왜구들을 격퇴하고 무사히 돌아올 것이오. 얼른 돌아올 테니 아무 걱정 말아요.”
 승언은 아내를 안심시키고 싸움터로 나갔다.

 아내는 남편이 싸움터로 나간 후에, 하루도 빠짐없이 바닷가로 나갔다. 집에만 앉아 있으면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더했다. 남편이 적과 싸우고 있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있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다. 바닷가에 서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하루종일 망부석처럼 기도하며 서있었다. 바닷가에 서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십년을 보내는 것처럼 길기만 했다. 

 하루, 이틀, 사흘,…….

 이렇게 길고 긴 날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한 달이 지나가고 일 년이 지나갔다. 이년이 지나가고 삼년이 지나갔다. 남편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소식도 전해오지 않았다. 아내는 식음을 전폐하고 바닷가에서 남편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점점 몸이 쇠약해져 갔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그 뒤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승언의 아내가 서있던 바닷가는 점점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바닷가 한가운데 쓸쓸하게 서서 남편을 기다리던 구부정한 아내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후 승언은 싸움터에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오매불망 그립던 아내를 찾았지만 아내는 이미 죽어서 바위로 변해있었다.

 승언은 아내가 없는 세상에서 삶의 의욕을 잃고 말았다. 바위가 된 아내 옆에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승언이 숨을 거둔 자리 역시도 서서히 바위로 변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아내가 변한 바위를 할매바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조금 큰 모습으로 서있는 바위는 할배바위라고 불렀다.

한편 바위가 서있는 지역의 꽃지 해수욕장 주변 지명은 ‘승언리’가 되었다. 바닷가로 나간 장수인 남편 승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라고 한다.

두 바위가 마주보고 서있는 모습은 노부부가 손짓하며 서로를 애타게 부르는 것만 같다. 바닷물에 노을이 물드는 석양 무렵에는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애절하게 적셔준다.
할매바위와 할배바위는 우리나라 명승 6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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