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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가야산 석문봉의 돌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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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가야산 석문봉의 돌기동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12.31 2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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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장사 남매의 슬픈사연 간직
▲ 석문봉 표석

충청남도청소재지가 자리 잡은 지역을  ‘내포신도시’라고 부른다. 실제 행정구역은 충남 홍성군 홍북읍인데, 많은 이들은 내포신도시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내포(內浦)’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원래 내포(內浦)는 순수한 우리말로 ‘안-개’라는 뜻이다. ‘안’은 안쪽〔內〕이라는 뜻이고, ‘개’는 바다〔浦〕를 뜻한다. 즉 바닷물이 육지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오는 지역을 내포라고 한다. 내포지역은 들락날락하는 리아스식 해안선으로 내륙 깊숙이 배가 들어올 수 있는 지리적인 특성이 있다.

 

▲ 석문봉의 거대한 바위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이 있고, 가야산 앞뒤의 열 개 고을을 내포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내포지역은 땅이 기름지고 인심이 좋아 충청도에서 사람살기에 가장 좋다고 했다. 가야산 주변의 열 개 고을이란, 현재의 홍성‧예산‧서산‧태안‧당진‧보령 등이라고 볼 수 있다.

 택리지에 내포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가야산은 서산시와 예산군의 경계에 위치한 명산이다. 최고봉인 가야봉은 해발 678m, 석문봉은 653m, 옥양봉은 621m, 원효봉은 605m이다.

 이들 봉우리 중에서 석문봉(石門峰)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석문봉 주변에는 다른 봉우리와 달리 기암괴석이 많다. 사자바위, 소원바위, 거북바위 등이 석문봉으로 통하는 능선주변에 늘어서 있다.

 특히 석문봉 정상부근에는 거대한 바위덩이가 마치 돌기둥으로 문을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런 모습들이 재미있는 전설의 유래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옛날 산 아래에 한 과부가 계곡 폭포에서 목욕을 하고 태기가 있었다. 과부는 열 달 후에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 석문봉 주변 거북바위

과부는 남편 없이 아이를 낳은 것이 부끄러워 남몰래 숨어서 남매를 키웠다. 쌍둥이 남매는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고 재주가 비상했다.

 두 남매는 서로 의도 좋아서 잠깐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였다. 매일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말하기를,

 “세상에 우리처럼 힘 센 남매도 없을 거야. 우리가 이곳에 쇠문을 달아놓고 우리끼리 어머니를 모시고 살자”며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과부가 낳은 쌍둥이 남매 소문은 임금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쌍둥이 장사가 세상에 태어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과부는 임금에게 불려가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네가 살고 있는 가야산에 힘센 장수는 한명이면 충분하다. 두 남매 중에서 한명은 없애도록 해라.”
 과부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들도 귀중하고 딸도 귀중한 자식인데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인단 말인가. 하지만 감히 왕명을 거약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몇날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두 남매를 불러놓고 임금의 명령을 전했다.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해라. 지금부터 목숨을 걸고 시합을 하겠다. 이기는 사람은 살고 지는 사람은 죽는 거다.”

 

▲ 석문봉 주변 사자바위

과부는 두 남매에게 시합의 내용을 설명했다.

 “지금부터 아들은 이곳 산봉우리에 돌기둥을 만들어라. 그리고 딸은 서울에 가서 쇠문을 가져와라.”
 두 남매는 즉시 목숨을 걸고 시합에 나섰다. 딸은 부리나케 서울로 달려갔다. 아들은 서해바다 천수만 궁갓이라는 곳으로 달려가서 큰 바위를 옮겨왔다. 큰 바위를 간신히 산꼭대기까지 들고 와 백일 만에 돌기둥을 세웠다.

 딸은 백일이 훨씬 지난 후에 쇠문을 들고 왔다. 쇠문을 구해가지고 오는 도중에 설사가 나와서 도저히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설사가 멎고 몸이 회복된 후에 쇠문을 들고 왔지만 이미 돌기둥이 세워진 후였다.

 딸은 과부어머니와 아들의 슬픔 속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 딸이 죽던 날, 모진 비바람이 몰아치고 벼락천둥이 천지를 울렸다. 돌기둥에 매달아놓은 쇠문이 번쩍 들려 하늘높이 날아가면서 멀리 천수만 바닷가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이후로 이곳 봉우리는 쇠문이 없어지고 돌기둥만 남게 되었다.
 옛날에는 비가 오는 날에 석문봉 부근에서 가끔씩 두 남매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오빠와 동생이 서로 안타깝게 부르는 소리가 산 아래 마을까지 들렸다고 한다.

 지금은 두 남매 전설과 함께 석문봉이라는 봉우리 이름만 남아서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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