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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 ‘순종태실도와 태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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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 ‘순종태실도와 태봉산’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10.22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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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태실, 일제의 훼손으로 화소비만 덩그러니
▲ 순종태실도.(한국학연구원 제공, 연합뉴스기사에서 옮겨옴)

지난 2018년 4월 28일자 인터넷 상에서 (서울, 연합뉴스, 박상현기자) ‘순종태실도(純宗胎室圖)’라는 기사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순종의 태실도라면, 우리고장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었다.

이 기사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제공한 태실도와 함께 태실도를 설명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기사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고종 11년(1874)에 태어난 순종의 태실(胎室·왕실에서 태를 봉안하던 곳)과 주변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순종태실도'(純宗胎室圖)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6월 2일까지 여는 기획전 '삼색전'(三色展)에서 조선왕실이 순종 태실을 충남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에 마련한 뒤 보고용으로 그린 그림을 전시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순종은 1874년 2월 8일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났고, 태실 공사는 그해 6월 8일 완료했다.

장서각 관계자는,

“그림 가운데에 있는 태실 봉우리에 태봉(胎峰)이라는 글자를 적었다”며, “봉우리 주변을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길지임을 알 수 있고, 오른쪽에는 바다가 있다"고 설명했다.

▲ 태봉산이 사라진 구항면 태봉리 모습.(도로변 왼쪽 산아래 붉은 지붕 자리에 태봉산이 있었다)

이 관계자는 "이 그림은 어람용으로 궁궐에 들어왔음이 분명하다"며 "전통적 산수화 기법이 반영됐으나, 구도는 19세기 후반기 양식으로 풍경화처럼 그린 점이 매우 독특하다"고 덧붙였다.

위 기사에 나오는 순종임금의 태실을 봉안했던 마을이름은 태봉리(胎封里)다. 태를 봉안한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마을이름이다. 태를 봉안했던 산은 태봉산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 순종임금의 태실을 봉안했던 태실은 없다.

▲ 구항면 태봉리 화소비 모습.

태봉산에 봉안되었던 순종임금의 태실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당했다. 일제는 전국에 있던 53기의 태실을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겨갔다. 이때에 순종임금의 태실 속에 봉안되었던 태항아리를 옮겨갔다고 한다. 이후 태실은 황폐화 되었으며 태봉산도 민간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사유지가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태실이 있던 태봉산마저 파헤쳐지고 사라진 것이다. 수년 전에 태봉산의 소유자가 산을 파내고 그 자리에 개인 사업장을 설치하였다.

지금 현재 태봉리에 남아있는 손종임금 태실의 흔적은, 옛날에 세웠던 화소비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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