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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은하면 장곡리(長谷里), 장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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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은하면 장곡리(長谷里), 장촌마을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09.06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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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운을 피해 옮겨간 긴 골 마을의 산신제
▲ 장촌 마을 전경.

우리고장 홍성군 은하면 장곡리 장촌(長村)마을이 있다. 마을의 모양이 길다는 뜻으로, 장말 또는 장촌이라고 부른다.

장촌마을 뒤쪽에는 해발 300여미터 높이의 긔암산이 자리잡고 있다.  장촌마을은 원래 현재 장소에 터를 잡았던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긔암산 옆 골짜기에 터를 잡았으나, 마을에 액운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액운을 피해 현재 자리로 마을을 옮겨왔다고 한다. 옛날에 처음 터를 잡았던 곳은, ‘구장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장촌마을을 감싸고 있는 긔암산 중턱에는 아주 오래된 산제당이 있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1월 3일 새벽에 산신제를 지낸다.

장촌마을의 산신제를 지내게 된 유래가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장촌마을이 구장말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 마을의 제일 나이 많은 노인이 어느날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백발의 도사가 꿈속에서 말하기를, “이대로 가면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죽는다. 빨리 마을을 옮겨라. 뒷골에 좋은 땅이 있으니 그 나무들을 베고 집을 짓고 살아라.”  하면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노인은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꿈 얘기를 했다. 모두들 현몽이라고 말하며 현재장소로 옮겨와서 살기 시작했다.

마을을 옮겼는데도, 몇 년 후부터 불행이 또다시 닥쳐왔다. 마을에 괴질이 생기고 호랑이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잡아가기도 했다.

노인은 또다시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우리가 이곳으로 옮겨와서 산신령님을 제대로 모시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면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뒷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 후부터 마을에 액운이 없어졌다고 한다.

▲ 산신제 모습(1999년 2월).

산신제의 유래를 살펴보면 마을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신제의 목적은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장촌마을은 마을의 중심이 배와 닮은 형국이어서 옛날부터 샘을 함부로 파면 안된다는 금기사항이 있었다. 그리하여 마을의 중심부인 벌말 가운데에는 커다란 공동샘이 하나 있었고, 다른 곳은 샘을 함부로 파지 못하게 하였다.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사용하던 공동샘은 1990년대 말에 경지정리 과정에서 메우고 터만 남아있다.

이웃 고장인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 전해오는 은산별신제도 비슷한 유래가 전해온다.

옛날 은산마을에 전염병이 유행하며 날마다 사람이 죽어나갔다. 어느날 마을의 노인이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백마 탄 장군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백제를 지키던 장군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부하들의 백골이 여기저기 산속에 흩어져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영혼이 방황하고 있으니, 유골들을 잘 수습하여 안장해다오. 그렇게만 해주면 마을의 전염병을 막아주겠다.”고 말하며 사라졌다.

노인은 낮잠에서 깨어나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꿈 얘기를 전했다. 백마 탄 장군이 가리키던 장소에 가보았더니, 정말로 백골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백골을 정성껏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그 뒤로 마을의 역질이 없어지고 평안하게 살 수 있었다.

은산별신제는 마을제사로 처음 시작되었다. 현재는 국가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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