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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밀리언셀러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오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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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밀리언셀러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오세영 소설가
  •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3.08.12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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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뛰어넘는 K-Story 만들 것”

 
1983년 영국 경매장에서 소묘화로서는 사상 최고가에 팔려 화제가 된 그림이 있었다. 네덜란드의 거장 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다.

“신문에 실린 한 장의 그림이 문학에 별 관심도 없던 저를 이야기꾼의 세계로 인도한 셈이죠.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설렙니다. 400년 전 서양화가가 조선옷 입은 한국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니, 그렇다면 당시 유럽에 조선인이 존재했다는 말이거든요. 구한말에 이르러서야 조선이 서양세계와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던 저로서는 정신이 번쩍 뜨일 일이었죠.”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1993년 처음 발표되어 200만 부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기록한 화제의 베스트셀러다. 루벤스의 그림 한 장에서 모티브를 얻은 오세영 작가는 이후 군데군데 드러나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났다.

“자료를 조사해가면서 이 ‘한복 입은 남자’의 늠름한 자태에 주목했습니다. 혈혈단신 먼 세계로 간 사람이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면, 그리고 루벤스 같은 거장을 초청해 초상화를 그리게 할 정도라면 상당한 신분과 재력의 소유자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여러 정황을 바탕으로 이 남자를 17세기 송상(松商)의 후예로, 그리고 그 활동무대를 당시 유럽세계를 대표하는 상업도시 베니스로 가정하고 이야기를 꾸며보기로 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한 이탈리아인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가 있던 조선청년을 고국으로 데리고 갔다는 기록, 그리고 현재 이탈리아 남부 ‘알비’라는 작은 마을에 ‘코레아’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작품 구상에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사람보다 돈을 중시하는 얄팍한 상혼, 권력에 편승해 한몫 챙기려는 약삭빠른 상혼이 판치는 요즘, 오세영의 역사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한국인의 저력과 끈질긴 생명력, 그리고 진정한 상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준다.

한 장의 그림이 운명 바꾸다

1954년 홍성읍에서 태어난 오세영 작가는 홍성고 교사였던 아버지의 전근과 함께 출향해 휘문고, 경희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6·25 때 홍성으로 피난 온 선친은 갈산보건소에서 근무하다 교편을 잡았다.

“홍성에 갔을 때 어머니께서 ‘저곳에 너의 셋째누이 남숙이를 묻었다’며 차창 밖을 가리키던 게 생각납니다. 집이 법원 근처였는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지형이 다 변해 알아볼 수 없다더군요. 바다에 면한 넓은 뜰의 심지 곧고 넉넉한 땅, 홍성이 제 고향이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며, 저 또한 곧은 심지와 여유 있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데뷔작 <베니스의 개성상인>으로 판매부수 200만 부를 넘기며 공전의 히트를 친 오세영 작가는 이후 <북벌>, <구텐베르크의 조선> 등의 역사소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사료의 부족한 부분을 스토리텔링으로 채워 기록하는 것 역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단언하는 그는 한국형 ‘팩션’의 원조이자 대표주자다. 팩트에 픽션을 가미한 ‘팩션’은 사실일 가능성에 소구해 역사를 새로운 각도로 해석하는 글쓰기다. 오세영 작가는 “박제된 역사에 숨결을 불어넣는 데서 오는 희열이야말로 팩션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면서도 “늘 조심해야 할 것은, 가능성에 소구하는 것과는 별개인 역사왜곡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덕분에 어느 책이 어디에 있는지 도서관 사서보다 잘 아는 경지에 오른 그다. 오세영 작가는 평소 다독 습관으로 소설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동시대의 서로 다른 공간에서 진행된 사건들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하기 위해, 쉬지 않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행간에 숨겨진 역사를 더듬는 이유다.

홍성출생 … “넉넉한 고향 늘 자랑스러워”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정교하게 결합한 오세영의 소설은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정조가 8일간 떠났던 화성행차를 배경으로 개혁파와 수구파의 대립을 묘사한 소설 <원행>은 2007년 케이블 드라마 ‘정조암살미스터리-8일’로 분하기도 했다.


2008년 발간한 <구텐베르크의 조선>의 단초는 2005년 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했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기조연설에서 비롯됐다. 근대활판인쇄술의 발명자인 구텐베르크가 사실은 조선의 금속활자에서 기술을 전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발언이었죠. 로마교황청 기록을 찾았더니 구텐베르크의 친구 중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추기경이 1452년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교황 니콜라우스 5세에게 소개했고 ‘42행성서’(일명 구텐베르크 성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음을 알렸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유럽, 중앙아시아, 조선을 종횡무진 오가며 세계를 하나로 묶어내는 솜씨는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장영실의 제자인 활자주조장이 세종의 밀지를 받고 명나라로 건너가고, 사마르칸트에서 교황 사절단을 만나고, 독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를 만나 새로운 금속활자를 주조한다는 이야기 속에는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 얽힌 세종과 사대부 간 갈등,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등 15세기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녹아있다.

2011년 발간한 <북벌-1659년 5월4일의 비밀>은 조선 후기 북벌론과 허생전이라는 소재에 그만의 상상력을 가미했다.

“만약 허생이 이완과 손잡고 북벌에 가담했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까, 또 북벌을 기치로 내세운 효종과 북벌명분론에 만족한 서인, 친청세력은 수면 아래서 어떤 힘겨루기를 했을까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고토를 회복하지는 않더라도 현실적인 카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북벌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귀띔하며 오세영 작가는 “소설에서 조선과 청나라는 명분과 실리를 나눠 가지며 공존의 길을 걷는다. 실제 전쟁 없이 더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게 진정한 북벌”이라고 덧붙였다.

한국형 팩션의 선두·대표주자

지난해 <칠지도>, <태양의 파편>을 발간한 오세영 작가는 요즘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환몽담과 실크로드를 소재로 하는 단편 연작을 준비 중이다. 전자는 K-Story를 지향하는 새로운 글쓰기로, 후자는 논픽션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바야흐로 스토리텔링의 시대, 아라비안나이트가 있다면 코리안나이트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에는 남녀의 사랑도 자유로웠고, 다양한 문물이 교류해 눈이 파란 외국인도 살았죠. 그만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신중한 역사고증 위에 상상력을 입혀, K팝을 뛰어넘는 K스토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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