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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순례/ 홍성읍 전통시장 내 ‘밀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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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순례/ 홍성읍 전통시장 내 ‘밀두리’
  • 안현경 객원기자
  • 승인 2013.06.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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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맘대로 요리해 주는 비밀 메뉴 ‘육선’ 인기

 
고기·해산물 사가면 원하는 음식 차림
육선, 임금님 고기반찬·‘6000원의 선택’

홍성읍에는 1일과 6일 오일장이 선다. 오일마다 서는 장날 말고 전통시장에 가본 일이 있는지? 붐비는 장날에 어묵이며 주전부리를 맛보고 소머리국밥을 먹는 것도 재미지만 장날이 아닌 한적한 날, 단골들만 아는 비밀스런 맛집에 들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이 맛집은 무엇을 먹을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음식 재료도 시장에서 사가지고 가서 그에 맞는 요리를 해달라고 내미는 집. 그러면 갖은 반찬과 재잘거리는 수다를 버무려 내미는 집. 바로 이번에 소개할 식당 밀두리의 차림법이다.

밀두리는 내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곳이 아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게 있는데 딱히 생각나는 식당이 없다면 찾게 되는 곳이다. 그날도 그랬다. 지인이 한우를 사준다고 하더니 밀두리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식당은 야외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은 물론 이층에 단체손님도 받을 수 있는 제법 널찍한 다락방도 있다. 안에서 시장 밖 풍경이 보이는데 이층이라고 하기엔 올라가는 계단이며 내부가 정겹고 은밀한 맛이 있다. 지인은 “누다락이라고 다락방 위층이잖아요. 이곳에 오면 어릴 적에 시골집에서 숨곤 하던 벽장도 생각나고 그러죠” 하고 말한다.

 
한우를 사가지고 오면 1인당 6000원씩 상차림비를 받고 구워준다. 다양한 반찬들이 이미 상을 점령하고 있는 가운데 옆에 있는 참한우정육점에서 사왔다는 마블링이 살아 있는 갈비살과 안창살이 불판에 올라간다. 핏기만 가신 부드러운 한우를 제대로 곰삭은 황석어젓에 한 점 찍어 먹어 본다. 사장님이 친정인 태안서 직접 가져왔다는 황석어젓의 비릿하고 짭쪼름한 맛이 고소하고 진한 한우의 맛과 기가 막힌 조화를 발휘한다. 맛도 맛이지만 양에 놀란다. 7만5000원의 가격에, 4명이서 소주를 부어라 마셔라 했는데도 고기반찬은 줄지 않아 결국 남은 고기를 포장해 가야 할 정도였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한 공무원은 “무엇보다 가격이 싸다는 게 매력적이죠. 한우를 술과 함께 푸짐하게 먹고 난 가격이 4인 기준 8만 원 정도예요. 이 정도 질 좋은 한우를 값싸게 맛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마음도 편하고 지갑 열기도 편한 곳이 바로 이곳이죠” 하고 말한다.

 
원래부터 이런 방식으로 운영됐던 곳은 아니다. 사장인 오혜경 씨가 5년 전 이곳을 시작할 때만 해도 칼국수집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식당 이름도 아산에 살던 마을 이름을 따서 ‘밀두리’라고 지었다. 그런데 가게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오 씨가 3여 년간 갖은 병치레를 하느라 식당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평일 전통시장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적은 탓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사업(이하 문정성시)’에서 ‘육선’이란 메뉴를 개발한 것이다.

육선이란 고기 ‘육(肉)’자에 차릴 ‘선(膳)’자를 쓰는데 쉽게 말하자면 고기반찬이다. 수산시장이나 정육식당들처럼 상차림비만 받고 저렴한 가격에 좋은 식재료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시장 내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 보고자 했고 그 상품의 이름을 ‘육선’이라고 지은 것이다.

문정성시사업을 하고 있는 문화연구소 길 최철 소장은 말한다. “홍성 장날 하면 소머리국밥을 주로 떠올리잖아요. 전통시장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 보았을 때 정육채소골목 쪽에 먹거리 개발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그러다 홍성에서 키운 한우를 취급하는 정육점들을 활용해 식당가를 활성화시켜 보고자 한 거죠. 이름은 이곳저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지난해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한참 방영중일 때 세종대왕이 고기 마니아로 나왔잖아요. 세종실록을 찾아보니 육선이 ‘임금님의 고기반찬’이라는 뜻이 담겨 있더라고요. 거기에 ‘육천원의 선택’이라는 의미를 더했죠.”

현재 육선에 참여하고 있는 정육점들은 삼일정육점, 참한우 정육점, 큰시장 정육점, 홍성한우명가 정육점, 홍성한우농장 정육점 등이다. 참여하고 있는 식당은 밀두리 외에도 주 전공이 영양탕과 삼계탕인 정든식당과 육개장과 냉면을 잘 하는 소원별미식당, 현빈식당 등이 있다. 육선은 상인회에 가입된 가게들만 가능하기 때문에 상인들의 결속에도 큰 역할을 한다. 여기에 최근 시골식당도 가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나아가 수산물도 같은 방식으로 하게 되면서 신용수산이나 서해수산에서 해산물을 사오면 식당들에서 양념비만 받고 요리해 준다.

여러 식당들 가운데서도 밀두리 식당이 육선의 효과를 가장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 말처럼 널찍한 다락방에서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손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주고, 덤으로 얹어주고, 집에 가져가라고 싸주기까지 하는 후한 인심이 더 크지 싶다. 본명보다 ‘밀여사’, ‘밀사장님’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오 씨는 “육선 덕분에 큰 덕을 보았다”고 고마워한다.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느라 수년 간 긴 어둠의 세월을 보냈던 그녀는 지금처럼 밝아지게 된 것도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 덕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만큼 식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정겹게 대한다. 그래서 그녀가 내놓는 차림에는 임금은 아닐지언정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운영시간: 오전 10시~밤 10시 (8월 1일~15일 휴가)
▲메뉴: 김치찌개·된장찌개·동태찌개 등 6000원, 육선상차림 6000원, 돼지두루치기 1만5000원, 닭볶음탕 2만5000원
▲찾아가는 길: 홍성읍 대교리 397-2 큰시장정육점 건너편
▲문의: 041) 632-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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