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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경력의 베테랑 이승훈 홍성CGV 영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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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경력의 베테랑 이승훈 홍성CGV 영사실장
  • 안현경 객원기자
  • 승인 2013.02.05 17: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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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최호감 좌석은 뒤에서 4번째 줄”

CGV홍성은 저녁시간이면 연인과 학생들, 가족들로 가득 찬다. 추운 날씨든, 비가 오든, 편한 주차가 가능하고 최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으니 이곳에서만은 대도시에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영화관 가장 높고도 어두컴컴한 곳에서 일하는 영사기사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슬픈 영화를 더욱 슬프게, 웃기는 영화를 더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영사실, 홍성의 ‘시네마천국’ 탐방취재를 했다. <편집자 주>

▲ 홍성CGV 영사실에서 이승훈 영사실장(오른쪽)이 김진석 기사와 함께 웃고 있다.
관계자 외 출입이 금지된 홍성CGV 7층. 조심스레 안내를 받고 내부에 들어서자 컴컴한 실내에서 반기는 건 왱왱 울리는 커다란 기계 소리다. 억 소리가 나는 영사기들은 각각의 상영관을 향해 있다. 김진석 영사기사는 막 배달된 신작 영화를 영사기에 옮겨 담고 있다. 디지털 시대니 만큼 필름 대신 영화가 담겨오는 건 외장하드. 4개관에 일곱 개의 영화가 상영되어야 하니, 배분을 잘 해야 한다. 김 씨는 “200기가 바이트가 넘는 영상을 돌리다 보니 기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비율을 잘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사기사는 단지 영상을 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필름이 극장으로 온 순간부터 상영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어떤 소리의 크기로, 어떤 화면 비율에 맞춰 상영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며, 값비싼 영상기기의 특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곳을 담당하는 이승훈 홍성CGV 영사실장은 우리에게 흔히 ‘기술감독’이라고 부르는 영역에 속해 있다. 2~3KW 광원을 식히기 위해 쉴새없이 들리는 기계음도 이승훈 실장에게는 ‘아기들이 내는 옹알이’다. “여기 있는 기계만도 내는 소리가 다 달라요. 소리만 듣고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어야 하죠.”

이승훈 영사실장은 이 분야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여러 곳의 극장을 거쳐 스카우트됐는데 홍성CGV가 만들어질 때 상영관 설계부터 참여했다. 46세 나이에 경력이 무려 27년. 해외 영상기기 업체에서도 초청하고 부천국제영화제 기술감독을 맡아오고 있기도 하다. “중학생 때부터 이 길을 알게 됐어요. 영사기사란 직업을 별도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김진석 씨처럼 스스로 극장 문을 두드리거나 저처럼 주위에 영사기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 실장의 아버지는 흑백 무성영화 시절부터 영사기사 일을 했다. 자연스레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이 씨 역시 영화 쪽에 꿈을 꾸게 된 것. 하지만 밤낮없이 극장에 붙어살며 기계와 씨름하고, 가족과도 멀어져 있어야 하는 힘들 일이었기에 집에서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버지 몰래 다른 극장에서 몇 년 동안 일을 배우고, 다시 혹독한 도제식 수업을 버틴 끝에야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영화 상영이 끝나고 정리까지 마치면 보통 새벽 3시가 된다. 다시 새로 상영할 신작의 세팅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이 실장은 “사운드와 화면을 체크할 때 맨 뒷줄에서 4번 째 가운데 자리에서 해요. 그러니까 그 자리가 가장 감상하기 좋은 자리라 할 수 있죠” 하고 말한다.

어렵게 세팅해 놓고 제대로 상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개봉했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도 그런 경우였다. 소리를 완벽하게 세팅했지만 관객들이 너무 시끄럽다고 한다며 음량을 줄여야 했다. 하지만 결국 줄인 음량에 대한 불만이 들어왔고, 다시 세팅을 거쳐 상영했다고.

쉬는 날이 없는 극장. 아침 8시 반부터 새벽 2시까지, 교대로 움직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와 씨름하는 것도 힘든 일일 텐데, 이 씨는 쉬는 날이면 다른 영화관을 찾아 다른 영사기사들의 세팅을 확인한다. 일주일에만 7~14편, 영화제 때는 500편을 몰아 본다니 ‘미쳐 있다’는 표현이 적절한 듯싶다. “8년 전 이 직업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언제나처럼 극장에서 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이셨죠. 마지막으로 했던 통화가 아버지가 다니시던 극장 영사기를 고쳐 달라는 이야기였어요. 그때 그 기계를 왜 못 고쳐드렸는지, 이젠 아버지 때문에라도 그만 둘 수가 없어요.”

한때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그는 지금 영사기사들에 관한 영상을 모으고 있다. “영사기사의 세계는 무척이나 신기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죠. 후배들의 실수며 각종 사고, 이야기가 무궁무진한데 언젠가는 이것을 영화로 출품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의 시네마천국을 꿈꾸는 이 실장은 “군에서 몇 백 만 원을 지원해 준다면 촬영팀을 꾸려 야외 영화 상영회를 열 수 있다”며 따뜻한 봄날 더 많은 사람들과 영화를 나누게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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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선매님께 2013-09-28 00:16:09
TV에 인터넷에 신문에 자주뵙지 못하지만 지금은 어디에 게신가요?
홍성 떠 나셨다구 하던데 궁금합니다.

짱구 2013-02-06 23:15:34
실장님 대단하세요.
2007년 MBC 방송출연
2013년 KBS2 방송출연
2013년 신문에나오시고 다음엔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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